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고마워요 달빛요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6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살면서 많은 음악의 도움을 받았지만, 서른 언저리에 찾아온 우울은 그의 노래 덕에 넘겼다. 2년 전 11월 6일 뇌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본명 이진원)’. 그의 노래 ‘스끼다시 내 인생’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은 잊혀지지 않는다. 맑고 힘찬 목소리, 누구보다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스끼다시’라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그리고 “언제쯤 사시미가 될 수 있을까”라는 절묘한 비유. 그의 다른 노래들을 열심히 찾아 듣기 시작했고,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미친 게 아니라면(절룩거리네)”을 목청껏 따라 부르며 절룩거리던 그 계절을 무사히 지났다.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았던 걸까. 떠난 지 2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많은 이가 그를 기억한다. 2주기를 맞아 홍대 앞에는 그를 추모하는 ‘달빛요정 스테이지’가 마련됐고, 그의 이름이 적힌 새 앨범도 나왔다. ‘너클볼 컴플렉스’라는 타이틀을 단 이번 음반은 가족과 동료들이 그의 컴퓨터에 남아 있던 음원을 다듬어 내놓은 것이란다. 일찍 찾아온 추위, 퇴근길에 그의 신곡을 듣는다. 덜 다듬어진 듯한 느낌도 있지만,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반갑다. 여전히 그는 “느리다고 놀림받았지/게으르다 오해받았지”라고 자조하다 불쑥 희망을 꺼내놓는다. “꿈을 향해 던진다/느리고 우아하게/찬란하게 빛나는/나의 너클볼(너클볼 컴플렉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유작앨범 ‘너클볼 컴플렉스’. [사진 미러볼 뮤직]

 딱 한 번 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한 달 수입 100만원이 현재 목표”라고 너무 쾌활하게 말해 당황했었다. ‘루저(loser) 감성’이란 표현은 싫지 않지만, 그것이 본인 음악의 전부는 아니라 했다. 누구나 경험하는 순간순간의 좌절을 일기처럼 써 내려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해보면 그의 노래가 자학만으로 끝나지 않음을 알기에 더 편하게 즐겼는지 모른다. “어차피 난 이것밖에 안 돼” 읊조리다가도 “나는 매일 조금씩 단단해져”라고 노래하는 이라서. “난 자신 있어 한번 살아보겠어(행운아)”라고 당당히 외쳐주기도 하니까. 스스로를 ‘루저’로 느끼는 열패감이란 결국 더 나은 자신에 대한 희망과 맞닿아 있을 테니.

 수능이 끝났다. 열 몇 해 인생의 가장 큰 숙제를 끝낸 많은 아이들이 또 절룩거리며 이 계절을 보낼 게다. 그들은 어떤 노래로 위로를 받을까. 달빛요정 같은 가난한 뮤지션들은 또 이 계절을 무사히 견디고 있으려나. 18일부터는 젊은 예술가 지원을 위한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될 예정이라 한다. 본래 계획보다 예산이 크게 줄어 효과가 없을 거란 이야기도 나온다. 언제쯤 날이 좀 포근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