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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도곡동 땅, 그리고 ‘용의자 X’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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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권석천
논설위원

난공불락의 미스터리가 다시 우리 앞에 등장했다. 서울 도곡동 땅이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 과정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진원지는 이 대통령의 큰형인 이상은 ㈜다스 회장. 그는 “조카(이 대통령 아들 시형씨)에게 부지 매입자금으로 빌려준 6억원은 펀드 수익금을 현금으로 인출해 모아둔 것”이라고 진술했다. 문제는 펀드에 있던 돈이 도곡동 땅 매각대금이란 점이다.

 우선 지금까지 나온 사실을 정리해 보자. ①1985년 이 회장과 이 대통령의 처남인 김재정씨가 15억6000만원에 도곡동 땅을 매입한다. ②1995년 이 땅은 263억원에 포스코개발에 매각된다. ③이 대통령이 땅의 실소유자였는지를 놓고 의혹이 풀리지 않고 있다.

 이 의혹에 처음 도전한 건 검찰이다.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는 “이 회장 몫 지분은 이 회장이 아닌 제3자 소유인 것으로 보인다”였다.

 “이상은씨가 매각대금 중 100억원을 채권간접투자상품 등에 10년 이상 묻어두면서도 개인적 용도로 쓴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당시 치열하게 맞붙었던 이명박·박근혜 후보 중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않은 결론이었다.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인 2008년 2월 BBK 사건 특검팀이 도곡동 땅 의혹을 다시 수사했다. 결론은 검찰과 정반대로 “이 회장 소유가 맞다”로 나왔다.

 “이상은씨는 당시 목장 경영 등으로 매입자금을 조달할 충분한 자금력이 있었으며….”

 검찰 발표도, 특검 발표도 직접적인 증거가 아니라 간접 정황에 따른 판단이었다. 지난 9월엔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국장이 “도곡동 땅 관련 포스코건설 내부 서류에 ‘실소유주: 이명박’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번에 다시 도곡동 땅 문제가 불거지자 “이 회장이 시형씨에게 거액을 선뜻 준 것으로 볼 때 이 대통령의 차명 소유가 맞았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특검에서 진실이 확인될 수 있을까. 한 전직 검찰 간부는 “매입 시점으로부터 27년이나 흘러 당시 은행 입출금 내역 같은 객관적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에도 의혹만 남긴 채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란 관측이다.

 자, 이제 우리가 빠뜨린 게 있는지 보자. 있다. ‘용의자 X’의 가능성이다. 한국 영화 ‘용의자 X’의 원작은 일본 추리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이다.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이 우발적으로 전 남편을 죽인 사실을 알고 그녀를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설계한다. 경찰은 주인공이 흘려놓은 단서를 따라가느라 사건의 진상에 다가서지 못한다.

 무슨 말이냐고? 이 회장의 ‘알리바이’ 자체가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회장과 시형씨는 차용증을 작성한 뒤 이 회장 집 붙박이장에 있던 6억원을 시형씨가 받아 갔다고 말한다.

 이 회장 말대로 6억원이 정상적인 펀드 수익금이고 차용증까지 주고받았다면 문제될 게 없는 돈이다. 그걸 전제로 한다면 시형씨가 왜 ▶경호원도 없이 혼자 이 회장 집까지 직접 차를 몰고 간 다음 ▶50㎏이나 되는 현금 다발을 받아와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회장 등의 진술은 대중에게 익숙한 ‘도곡동 땅’이란 키워드가 나오면서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 회장 펀드 수익금 외에 ‘제3의 출처’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는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한 변호사의 시각이다.

 “이 회장의 프레임에 빠질 가능성은 경계해야 합니다. 진술대로라면 내곡동 부지 소유자는 돈을 빌린 시형씨가 됩니다. 일단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기 어렵게 되지요.”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용의자 X’는 이렇게 묻는다.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만드는 것과 그 문제를 푸는 것 중 어느 게 더 어려울까.” 도곡동 땅 의혹은 이 질문만큼 답하기 힘든 고차함수 문제가 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