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황당한 공약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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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황당하거나 과장된 공약은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선거 이후에도 정치·경제·사회 질서에 부담을 준다. ‘황당’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사회가 과도한 비용을 치르는 경우도 많다. 1987년 노태우 후보의 새만금 개발, 92년 정주영 후보의 ‘반값 아파트’, 97년 김대중-김종필 연합의 내각제 개헌, 2002년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2007년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등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이번 대선에서도 정상궤도를 벗어난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정책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설익은 정책,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설 중단과 같은 공약이 대표적이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원자력 발전 축소를 공약했다. 수명이 다하면 도태시키고, 추가 건설을 하지 않으며,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크게 늘린다는 내용이다. 이는 원전을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기존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간단히 바꿀 수 있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단가가 매우 높다. 이를 늘리면 전기료가 크게 오른다. 두 후보가 약속한 정도로 빨리 생산이 가능하지도 않다.

 특히 정당 차원의 정책 개발과 검증 과정이 전혀 없는 안철수 후보의 경우 ‘비현실적 공약’을 많이 내놓고 있다. 안 후보는 4대 강 실태조사를 통해 보(洑) 철거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16개 보는 수량을 확보하고 홍수를 예방하는 핵심 장치다. 철거에도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야 한다. 이제 막 완공한 사업을 제대로 지켜보지도 않고 되돌리자는 것은 무리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는 한강 수중보 철거를 언급했다가 반대에 부닥쳐 철회한 적이 있다. 문재인 후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유치하려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전북 전주와 경남 진주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해 구설에 올랐다. 전주에서는 “(LH공사를 진주에) 빼앗겼다”고 비판하고, 진주에서는 “(LH공사 이전을) 차질 없이 완수되도록 하겠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이런 모순되는 발언은 결과적으로 지역갈등을 조장하게 된다.

  새누리당의 경우 부산 지역 의원들은 이 지역에서 야권 후보 지지율이 상승하자 박근혜 후보에게 ‘가덕도 신공항’ 공약을 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신공항 공약은 부산 지역의 숙원사업이다. 박 후보는 과거 동남권 신공항 공약에 찬성한 적이 있다. 문제는 지역 선정이다. 경북이 희망하는 밀양과 부산이 희망하는 가덕도를 두고 갈등이 높아 현 정권에서 취소했던 공약이다. 차기 정권에서 이런 갈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약 발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황당한 공약은 정책이 아니다. 정말 필요한 정책, 집권 후 실행 가능한 현실적 정책을 구체적 재원 조달 방안까지 같이 내놓아야 제대로 된 정책이다. 이런 엉터리 정책으로 표를 호소하는 후보들의 사고방식은 유권자를 얕보는 행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