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 후보가 빠져선 안 될 함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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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호 02면

제주 신공항, 춘천~속초 고속화철도, 충청권 과학비즈니스벨트….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지역개발 공약이다. 남부권 신공항 건설은 조만간 공약에 포함될 게 확실하다고 한다. 모두 여야 다툼이 뜨거운 접전 지역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호남·충청을 돌며 충청권 광역 철도망, 도시철도 2호선 사업,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건설 등을 약속했다. 공약마다 수조원에서 10조원까지 들어갈 사업이다.

이런 와중에 문 후보가 LH공사 본사 유치 경쟁을 벌였던 경남 진주와 전북 전주를 놓고 상반된 말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지난달 25일 당 경남선대위 출범식에서 “LH공사 이전이 포함된 진주 혁신도시 사업을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보다 10일 전 전북 간담회에선 “빼앗긴 토지주택공사(LH공사)와 지지부진한 혁신도시 문제를 저의 일처럼 해결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선거철에 지역개발 공약으로 표를 잡으려는 공직 후보자의 노력을 마구잡이로 탓할 수는 없다. 이들 공약 속엔 개발 소외 지역의 주민들이 품은 꿈과 기대가 담겨 있다. 더구나 지역 균형발전은 12월 대선의 중요 화두 중 하나다. 계층 간 양극화 해소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뿐인 LH 본사를 두고 전주에 가선 전주로, 진주에선 진주로 유치하겠다는 식의 발언이라면 진지하고 믿음직한 약속이라고 보기 어렵다. 가뜩이나 대선 주자들의 대형 공약을 놓고 포퓰리즘 논란이 일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공약 사업의 재원 대책을 밝히지 않아서다. 돈을 댈 방안이 없는 공약이라면 공약이 아니라 정책 아이디어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2007년 대선 때 남발된 선심성 지역개발 공약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명박 정부가 약속을 어겼다고 비난받는 이유 중 하나다. 섣부른 공약이 폐기되거나 변경되는 과정에서 지역끼리 부딪치고 민심은 돌아섰다. 세종시, 동남권 신공항,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대표적 사례다. 일부 사안에 대해선 이 대통령이 직접 유감을 표명할 정도였다. 일부 시민단체는 아예 ‘개발공약 금지법’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부만의 일도 아니다. 공약의 제목과 내용만 다를 뿐 대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고질병이다. 온 나라가 ‘아니면 말고’식 공약으로 들썩이다 선거 뒤에 혼란과 분열을 반복했다.

선거 공약은 상황에 따라 수정될 수도, 폐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토 균형발전 차원의 대형 사업이 그저 표를 얻기 위한 공약(空約)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전체 국민이 낸 세금으로 특정 지역개발 사업비를 부담해야 하는 이유도 명쾌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여야의 텃밭 지역에서 터져나오는 역차별 논란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대선은 공약(空約)으로 승부를 겨루는 ‘재치 마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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