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가엾은/가여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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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피에타는 그렇게 무섭고 잔인한 자들도 사랑 때문에 운다는 걸, 그들도 결국 한없이 약하고 가여운 인간 중 하나라는 걸 느끼게 만드는 영화였다.” 글을 읽다 보면 이렇게 ‘가엾은’ ‘가여운’이 섞여 쓰이고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가끔씩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물어오는 이들이 있다.

 정답부터 미리 말하자면 ‘가엾은’ ‘가여운’ 둘 다 맞는 표현이다. ‘가엾다’와 ‘가엽다’가 복수 표준어이기 때문이다. ‘가엾다’는 ‘가엾은, 가엾고, 가엾으니, 가엾지’ 등으로 활용된다. ‘가엽다’는 비읍 불규칙 활용을 하는 단어다. 이런 유의 단어들은 뒤에 오는 모음에 따라 ㅂ이 ‘오’나 ‘우’로 바뀐다. 그래서 ‘가엽다’의 경우 ‘가여운, 가엽고, 가여우니, 가엽지’ 등으로 활용하게 된다.

 ‘섧다’와 ‘서럽다’ 역시 복수 표준어다. “설워라 설워라 해도 아들도 딴 몸이라/ 무덤 풀 욱은 오늘 이 살부터 있단 말가/ 빈말로 설운 양함을 뉘나 믿지 마옵서.” 정인보 선생의 시조 중의 ‘설워라’는 ‘섧다’에서 활용한 것이다. ‘섧다’는 ‘설워, 설우니, 섧고, 섧지’ 등으로 변화한다. 종종 “너무 섧어서 엉엉 울었다”처럼 ‘섧어서’ ‘섧으니’로 쓰는 분들이 있는데 ‘섧다’ 역시 비읍 불규칙 활용을 하므로 ‘설워서’ ‘설우니’로 써야 한다는 걸 기억하자. ‘서럽다’는 ‘서러워, 서러우니, 서럽고, 서럽지’ 등으로 활용한다.

 ‘여쭈다’와 ‘여쭙다’도 둘 다 표준어이며 위 단어들과 유사성이 있으므로 같이 기억해 두자. ‘여쭈다’의 경우는 ‘여쭈어, 여쭈니, 여쭈는’ 등으로 활용하고 ‘여쭙다’는 ‘여쭈워, 여쭈우니, 여쭙는’ 등으로 활용한다. 그러므로 사극에 흔히 등장하는 “지금 아니 계신다고 여쭈어라” 같은 표현에서 ‘여쭈어라’ 대신 ‘여쭈워라’를 써도 틀린 게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여쭈워’나 ‘여쭈우니’보다는 ‘여쭈어’ ‘여쭈니’가 더 일반적인 용어이므로 틀렸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이쪽을 사용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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