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업의 치어리더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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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외국의 한 중견 언론인이 최근 몇년간 자신이 경제기자로서 저지른 과오를 타사 지면을 통해 신랄히 자아비판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3일자에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유럽판)의 경제 담당 에디터인 제임스 레드베터가 기고한 '구겨진 경제기자의 체면'이라는 제목의 참회문을 실었다.

레드베터는 기고문에서 "지난 해는 그동안 미국 기업의 지배구조.회계제도가 실패작이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 해였으며,'엔론과 월드컴 파문'은 경제기자들이 본연의 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런 비리가 빚어진 것은 기자들이 기업의 문제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

경제현상을 올바로 독자들에게 전해야할 기자들이 기업이 내놓는 회계수치에 대해 의심을 품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경영자나 기업을 지나치게 추켜 세우는 '치어리더'역할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그는 언론이 이른바 '신경제'의 거품 만들기에도 일조했다고 꼬집었다.

기술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다고 열심히 설교만 했을 뿐, 때에 따라선 그런 기술들이 작동하지 않거나 상품화할 시장이 존재치 않을 수 있음을 경고하는데 기자들이 게을렀다는 것이다.

인터넷 회사 등 신경제 주도기업을 취재하면서 이해 당사자인 증권사나 창업투자회사의 발표에만 의존하지 말고 객관성을 유지하는데 노력했어야 했다는 게 그의 반성이다.

실제로 레드베터는 자신의 실수를 털어놨다. 99년초 인터넷 음반 판매업체 두 곳의 합병 기사를 쓰면서 "합병회사의 경영진이 튼튼하며, 영업이 궤도에 올랐다"는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평가를 그대로 인용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해당 증권사가 보유중이던 합병사 주식을 보도자료 발표후 모두 팔아 치웠더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당시에는 그같은 사실을 동료나 독자들에게 실토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레드베터는 "이제부터 기자들이 해야할 일은 더 이상 많은 투자자들이 현혹되기 전에 향후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거품을 제 때 터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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