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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한부 종말론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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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시한부 종말론은 세기말적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3세기 이후 세기말이면 반복돼 등장하는 주장이다. 한국의 시한부 종말론이 본격화한 건 1960년대 이후다. ▶동방교주 노광공(65년 8월 15일 종말 주장) ▶장막성전 교주 유재열(69년 11월 1일 종말론) ▶천국복음전도회 구인회(73년 11월 10일 종말론) 등 4~5년에 한 번꼴로 시한부 종말론이 출몰했다. 89년에는 8월 8일 종말을 기다리며 전북 회문산으로 주부 34명이 집단 가출하는 사건도 있었다.

 시한부 종말론이 정점에 이른 건 92년이다. 당시 10월 28일을 휴거일로 주장한 다미선교회를 비롯해 하느님의 성회(9월 28일), 다베라선교회(10월 10일) 등 50여 개 종파가 시한부 종말론을 퍼뜨렸다. 종교학계에선 92년 당시 전국적으로 2만여 명의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있었다고 추정한다. 90년대 초에는 99년을 종말 시기라고 주장하는 집단도 있었다. 부산 성화선교교회는 초·중·고생 30여 명을 혼숙시키며 99년 종말론을 퍼뜨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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