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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비극’ 렌즈로 남기고 떠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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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5년간 5만여 점의 사진을 찍은 빌헬름 브라세. [AP=연합뉴스]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돼 있으면서 수용소 내 잔혹상을 사진에 담았던 빌헬름 브라세가 23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아우슈비츠 박물관 관계자을 말을 인용해 24일 외신들이 보도했다. 95세.

 브라세는 1940년 나치가 점령한 폴란드를 탈출하려다 체포됐다. 유대인은 아니었으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다. 처음에는 가스실의 시신을 화장터로 옮기는 일을 했다. 그가 사진을 찍은 경험이 있는 것을 알게 된 수용소 간수들이 그에게 내부 기록용으로 수감자 사진을 찍고 나치 고위 관계자의 방문을 기록하는 일을 맡겼다. 나치는 기록이라면 병적으로 열광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의사들이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행한 의학 실험도 사진으로 남기라는 지시를 받았다.

 브라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5년 넘게 있으면서 5만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중 4만여 장이 보존돼 있다. 유대인 수감자는 3만5000명까지 찍었다. 수감자도, 그도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따라야 했다. 그 뒤로는 유대인들이 바로 가스실로 바로 보내지는 바람에 그는 더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사진으로 찍지 못한 것도 상세히 마음 속에 기록해 두었다. 생전의 인터뷰에서 수용소 간수들이 유대인 수감자의 목을 삽으로 눌러 질식시켜 죽이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죽음의 수용소에 관한 많지 않은 사진 기록의 하나인 그의 사진은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 나치 기록물에서 발견됐다. 그는 전쟁 막바지에 기록물을 없애라는 나치의 명령을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나치의 범죄를 입증할 귀중한 증거물을 지켜냈다. 기록물들은 현재 아우슈비츠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오스트리아와 폴란드계 혈통인 브라세는 아우슈비츠 박물관 건립에 앞장섰다. 전후 수년간 독일 등의 젊은층에게 유대인 대학살의 교훈을 알리는데 힘썼다. 종전 후 폴란드로 돌아가 결혼해 두 아이를 뒀다. 아우슈비츠 박물관 관계자는 “브라세가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사진작가로 일하려 했으나 수용소 시절의 끔찍한 충격으로 인해 카메라를 손에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2005년 폴란드의 이렉 도브로볼스키 감독에 의해 브라세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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