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필립, 정수장학회에서 손 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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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박근혜 후보의 역사관 검증에서 시작된 정수장학회 이슈는 이제 최필립(84) 이사장의 처신문제로 번지고 있다. 대선은 후보를 둘러싼 예민한 사안들이 치열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적 합의에 이르게 되는, 민주주의 사회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 이사장은 하루라도 빨리 정수장학회에서 물러난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이사장직을 즉각 사퇴하고 나머지 문제는 4명의 이사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것이 현재까지 형성된 국민적 합의이며 최 이사장도 인생 말년을 명예롭게 보내는 길이 될 것이다. 남은 이사들도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들은 정수장학회에 새로운 지배구조가 들어설 때까지 재단의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으로만 소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최필립 이사장은 자기에게 주어진 2014년까지 임기를 지킬 것이며 그럴 법적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잘못됐다.

 객관적으로 최필립 이사장의 사퇴는 여야 정치권과 모든 주요 언론, 심지어 재단 이사장을 10년이나 지냈던 박근혜 후보까지 종용하고 있는 사안이다. 대선 국면에서 한국 사회가 이처럼 한목소리를 낸 이슈는 없었다. 사유재산도 아닌 공익재단의 이사장이 이렇게 수준 높은 국민적 합의를 거스를 명분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법인식이란 측면에서 최 이사장은 재단 정관이 자신의 임기를 보장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갇혀 있는데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법철학의 기본 정신을 망각한 것이다. 도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를 법의 이름으로 억지로 지키겠다는 아집에 불과하다. 법을 빌려 도덕을 잃는다면 평생 공직에 몸바쳐온 인생의 명예는 어떻게 지키겠는가.

 주관적으로 최 이사장은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관이다.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나만이 박근혜를 지킬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빠져 있다고 한다.

 최 이사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관으로 자처하는 건 개인의 가치관으로 상관할 바 아니지만 그의 현재 처신이 박근혜 후보를 지키는 게 아니라 망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고 있다는 점이 치명적인 주관적 오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