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조선민족 對 미국의 대결 구도'?

중앙일보

입력

북한의 정세 인식이 아직도 어설프다.

북한은 1일 신년 공동 사설에서 한반도 정세를 '북과 남의 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 구도'로 규정했다.

북핵에서 비롯된 한반도 위기상황을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 한국과 주변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나온 북측의 이같은 궁색한 인식은 실망스럽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하고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국내외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북 봉쇄의 효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북핵 문제를 한국 주도로 풀어보겠다는 의욕을 내비친 盧당선자는 남북 간 직접대화와 함께 주변국의 지지를 얻어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남한을 볼모로 한 북핵 문제가 민족의 안위에 대한 위협이란 인식과 함께 한국의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깔고 있다고 본다.

남북한은 핵무기 개발 및 보유가 민족의 장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공유했기에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또 한국은 핵무기가 갖는 국제적 성격상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민족의 자존심을 접고 미국 주도의 대북 협상을 허용한 바 있다.

이제 북한은 핵 문제 논의에 한국의 간여를 배제한 채 대미 협상에 집착하면서도 미국의 외교압박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 공조에 호소하는 이중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북측이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 한국 내 반미 분위기나 '우리 민족끼리'의 정서를 계속 부추긴다면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이들마저 곤혹스럽게 만들 뿐이다.

북핵에 무심했던 한국민도 점차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한국 정부는 주변국의 대북 설득을 도모하기 위해 전방위 외교에 나섰다.

북핵이 민족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 이익이 개입된 국제적 사안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같은 정세 인식을 북측이 공유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민족 이익도 보장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