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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IP 도입…제 살 깎는 역발상 서비스로 성장 돌파구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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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이석채 KT 회장은 정보통신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한 정통 경제 관료 출신입니다. 2009년 1월 취임 당시 KT는 이류 통신회사로 전락할 위기에 몰려 있었죠. 관료 시절 강한 추진력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그는 석 달 만에 자회사인 KTF를 전격적으로 합병해 유무선 통합 시대를 열었습니다.

아이폰을 처음 도입해 국내에 스마트 혁명의 깃발을 들어올렸는가 하면, 통신회사 KT에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미디어 그룹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3년 동안 영업이익을 57% 신장시키는 등 경영 실적도 좋습니다.

2년 연속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DJSI) 유무선 통신 분야 세계 1위 기업 선정 등 KT의 국제적인 위상도 끌어올렸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IT 분야에서 각종 융합 비즈니스를 주도해 ‘게임 체인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석채 리더십의 키워드는 통찰력과 용기입니다. 이 회장의 컨버전스 경영론을 3회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

KT에 부임한 후 제가 벌인 일을 관통한 개념은 혁신입니다. 저는 혁신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오늘의 몸부림이라고 정의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한 혁신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죠.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사실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미래를 예측해 봅니다. 그 예측을 토대로 오늘 어떻게 살 건지 결정하죠.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맞춰 현재 어떤 비즈니스를 할 건지 선택해야 합니다. 성공하는 기업의 필요조건이죠.

위대한 기업들이 몰락하는 것도 대부분 미래의 도전에 대비하지 않고 기득권에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피처폰 시대의 최강자 노키아도, 필름시장의 지존 코닥도 그래서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미래의 눈으로 오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175년 지속성장 P&G 성공 비결은 혁신

P&G는 175년 된 다국적 생활용품 제조업체입니다. 이 회사가 이토록 오랫동안 번창하는 건 끊임없이 혁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는 고객이 새로운 가치를 느끼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냅니다.

중요한 건 고객 가치를 향상시키면서 동시에 회사가 성장하고 이익을 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객 가치를 키우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쇠락할 수밖에 없지만, 고객 가치를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상쇄(trade-off)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거든요.

일례로 인터넷전화가 나오면서 유선전화 사업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스마트폰은 피처폰 부문을 위축시켰죠. 그런데 이런 부수적인 비용 발생을 우려해 주저하면 혁신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때 필요한 게 미래의 시각으로 현실에 접근하는 동태적 분석(dynamic analysis)입니다. 상쇄가 일어난다는 데 주목하는 건 반대로 정태적 접근이죠.

우리 회사의 IPTV 서비스인 올레TV(OTV)는 당초 고사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OTV와 KT가 최대주주인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를 결합한 상품 올레TV스카이라이프(OTS)를 내놓았습니다. 수신료가 각각 1만원이었지만 1만원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OTS를 출시했죠. 당시 내부에서 그렇게 팔면 손해라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소비자들에게 좋은 서비스로 선택을 받을 수 있고 기존 가입자의 해지율도 떨어뜨려 오히려 이익이 날 것으로 봤습니다. 우리 간부들을 설득하는 데 석 달 이상 걸렸지만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죠. 제가 CEO지만 설득 과정에서 힘으로 누르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려 노력했습니다. 혁신의 성패를 결정하는 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참이기 때문이죠.

인터넷전화(VoIP) 서비스도 유선전화회사로서 제 살을 깎는 아픔이었지만 그 덕에 3년 새 10.7배로 고객이 늘었습니다. 결국 이런 발상의 전환으로 KT는 IPTV 시장 등에서 게임 체인저가 됐습니다. 역발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한 거죠. 만일 매출상쇄(canivalization)가 두려워 서비스를 포기했다면 이들 시장을 경쟁사에 내줄 수도 있었어요.

올레TV(위성+IPTV) 내부 반대에도 강행

유무선 통합이나 OTS는 혁신인 동시에 융합입니다. 또 다른 융합 혁신의 장으로 4세대 이동통신인 ‘롱텀에볼루션(LTE)’ 네트워크와 무선 인터넷망인 ‘와이브로’와 연결되는 KT의 클라우딩 커뮤니케이션 센터(CCC) 기술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혁신을 통해 KT는 게임 체인저가 됐고 이들 혁신이 대세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룰을 바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KT·KTF 합병 후 경쟁사들도 통합회사로 변신했지 않습니까.

2009년 KT에 처음 왔을 때 제가 통신이라는 업을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업 범위를 통신업에 국한하지 말고 통신을 근간으로 우리의 역량을 활용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말했습니다. 통신업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그때 우리 업을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는 비즈니스로 확장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지평이 무한대로 넓어지는 거죠.

문제는 사업을 다각화할 재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착안한 게 내부의 비능률을 제거해 성장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현업을 하는 기관장실을 전부 축소하고 임원실 경비는 물론 임원 성과급·기본급도 삭감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업무를 보는 스마트 워킹, 스마트 패밀리 제도 등을 도입해 일하는 방식도 혁신했습니다. GWP(Great Work Place) 구축을 위한 이런 노력이 평가를 받아 지난해 KT가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대상을 받았습니다(GWP 코리아 선정).

임원들의 리더십 스타일도 바뀌었습니다. 취임 초 이사회에서 제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해도 임원들이 아래에 메신저처럼 전달만 할 뿐 일이 되도록 지휘를 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책임 지고 성취하는 지휘관형 리더십을 요구했죠. 조직문화의 혁신 차원에서 비리와 악습의 단절도 추진했습니다. 이를 위해 현직 검사를 윤리경영실장으로 영입했어요.

KT가 혁신을 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우리 회사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노조 지도자들도 이런 위기감을 공유했었죠. CEO로서 저의 꿈은 전 직원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바꿔놓는 겁니다. 경영전략가인 게리 하멜 교수는 혁신 유전자(DNA)를 조직에 뿌리내리는 데 보통 5년 이상 걸린다고 하더군요. 특히 ‘주인 없는 기업’인 KT가 혁신을 하기는 더 쉽지 않아요.

우리 회사의 남은 큰 과제는 공급자 마인드 극복입니다. 단적으로 과거 우리는 고객을 전화 가입자라고 불렀습니다. 공기업 시절의 유산이죠. 이런 갈라파고스 문화를 고객 마인드로 바꾸지 않으면 자연히 쇠락할 수밖에 없어요. 아이폰 등 고객지향적인 외래종 제품이나 서비스에 눈을 돌린 고객으로부터 외면당하면 별수 없이 멸종 위기에 처할 수밖에요.

기획·정리=이필재 포브스코리아·이코노미스트 경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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