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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본드, 로저 무어 최고 본드걸, 우르술라 안드레스 최고 수입, 20탄 ‘어나더 데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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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12면

제임스 본드는 원래 조류학자 이름
영화 007시리즈는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의 소설에 기초를 두고 만들었다. 실제로 영국 정보부에서 근무한 적이 있던 플레밍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1953년 첫 소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을 썼다. 그 선풍적 인기에 힘입어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문레이커(Moonraker)』『다이아몬드는 영원히(Diamonds are Forever)』『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닥터 노(Dr. No)』『골드핑거(Goldfinger)』『선더볼(Thunderball)』『나를 사랑한 스파이(The Spy Who Loved Me)』『포 유어 아이스 온리(For Your Eyes Only)』『여왕폐하 대작전(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두 번 산다(You Only Live Twice)』『황금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 등 13편의 첩보소설을 내놨다. 플레밍은 63년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 영국의 영화 제작자인 해리 샐즈먼과 앨버트 브로콜리에게 영화 판권을 넘겼기 때문에 이들은 최장수 첩보영화의 신화가 된 007 시리즈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나중에 ‘더 리빙 데이라이츠(The Living Daylights)’와 ‘옥토퍼시(Octopussy)’의 초안도 발견되었고 그 구성들 역시 영화에 사용됐다.

영화 007, 그 50년의 이야기

재미있는 건 제임스 본드가 실제 존재했던 인물의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플레밍은 첫 소설 『카지노 로얄』을 쓰면서 주인공 이름 때문에 고민했다. 그는 자메이카에 있는 별장 ‘골든 아이’에서 조류 관련 서적을 보다가 『서인도제도의 새들』이라는 책의 저자 이름인 제임스 본드(이름에서 앵글로색슨의 냄새가 나면서 낭만적이지 않고 남성적이며 지극히 평범한!)가 마음에 들었고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소설이 영화로 제작돼 대성공을 거둔 뒤에도 두 사람은 친구로 지냈는데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가 이언 플레밍을 만나러 자메이카로 갔을 때 세관 직원들이 여권에 적힌 이름을 보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는 일화도 있다.

영원한 상징, 테마음악과 총구서 총 쏘는 첫 장면
영화 007 시리즈에는 정형화된 상징들이 있다. 몬티 노먼 작곡, 존 배리 편곡의 테마곡은 대표적이다. 흐느적거리는 듯한 노먼의 곡이 맘에 들지 않은 제작진은 로큰롤 밴드 ‘존 배리 세븐’의 멤버로 활동하던 작곡자 배리에게 편곡을 요청했고 곡은 “딩디리딩딩 딩딩딩~” 하는 빠른 기타 선율로 재탄생했다.

테마 음악이 흐르면서 제임스 본드가 원 중앙(총구)으로 걸어나와 총을 쏘는 ‘건 배럴 신(Gun Barrel Scene)’도 빼놓을 수 없다. 모리스 빈더가 만든 이 장면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나오는 신으로 1탄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는 건 배럴 신으로 시작해 5분 정도 나오는 프리 타이틀 신, 그리고 영화 제목과 함께 주연 및 스태프 이름이 흐르는 메인 타이틀 신의 순서를 지켜왔다.

그런데 21탄 ‘카지노 로얄’에서는 프리 타이틀 신 이후에 건 배럴 신이 나왔고, 22탄 ‘퀀텀 오브 솔라스’에서는 건 배럴 신이 파이널에 사용돼 지금까지의 전통을 깼다.
제임스 본드의 자기소개도 상징이라면 상징이다. 1탄 ‘살인번호(Dr. No)’에서 숀 코너리가 잔뜩 폼을 잡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말하는 장면은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촌스럽지만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가장 유명한 영화 대사 100선’에서 22위에 올랐다.

하지만 007 시리즈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제임스 본드다. 최고의 그레이 슈트와 턱시도를 입고, 스위스 명품 시계를 차며, 본드카를 타고, ‘젓지 않고 흔든(shaken not stirred)’ 마티니를 주문하는 영국 신사 제임스 본드는 모두 이언 플레밍의 원작에 표현된 모습이다. 제임스 본드의 원조인 숀 코너리(1~5, 7탄), 단 한 편만 찍은 조지 레이전비(6탄), 최장수 본드 로저 무어(8~14탄), 와일드 가이 티머시 돌턴(15~16탄), 시리즈를 부활시킨 피어스 브로스넌(17~20탄), 그리고 화끈한 남자 대니얼 크레이그(21탄~ ). 이들이 지난 50년 동안 ‘악으로부터 세상을 구한’ 6명의 제임스 본드들이다.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캐릭터는 본드걸. 역대 가장 섹시한 본드걸로 평가되며 본드걸의 스탠더드가 된 우르술라 안드레스(허니 라이더 역)를 비롯해 캐롤 부케, 킴 베이신저, 그레이스 존스, 테리 해처, 양자경, 소피 마르소, 할리 베리, 에바 그린 등 아름답고 관능적인 본드걸들은 액션영화 최고의 미장센이다.

꺼져 가던 007 시리즈 부활시킨 피어스 브로스넌
숀 코너리는 007 시리즈로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자신의 캐릭터가 굳어지는 것을 염려해 67년 제작된 ‘두 번 산다’ 이후로 시리즈를 떠나기로 한다. 제작진은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이언 플레밍의 원작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대작 ‘두번 산다’를 일본에서 현지 로케이션으로 찍었다. 스펙터의 화산(신모에봉) 지하기지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시리즈 역대 최고의 비밀기지로 손꼽히기도 한다.

그 후 팬들에게 생소한 배우 조지 레이전비 주연의 ‘여왕폐하 대작전’(69년)은 그의 어설픈 연기에도 최고의 007 영화 중 하나로 평가되며, 더구나 제임스 본드가 결혼을 하기 때문에 가장 로맨틱한 영화라고 말해진다.

영화는 성공했지만 레이전비는 007 시리즈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해 바로 하차했고 제작진은 다시 숀 코너리를 모셔와 7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71년)를 찍는다. 숀 코너리 덕분에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작품성은 별로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진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로저 무어를 기용하고 8탄 ‘죽느냐 사느냐’(73년)를 제작해 세대교체에 성공한다. 로저 무어는 14탄 ‘뷰 투 어 킬’(85년)까지 최장수 제임스 본드를 지냈다.

여기서 제작진은 고민에 빠진다. 플레밍의 소설을 거의 다 사용한 데다 소련(러시아)과의 냉전관계가 완화되면서 더 이상 소련을 적으로 묘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저 무어의 후임도 구해야 했다. 그래서 후보에 여러 번 올랐던 와일드 가이 티머시 달턴을 영입한다. 하지만 기존 영화들을 한꺼번에 리메이크한 15탄 ‘리빙 데이라이츠’(87년)와 티머시 돌턴의 거친 면을 잘 표현한 복수극 ‘살인면허’(89년)는 흥행에 실패하고 시리즈는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숀 코너리의 긴박감, 로저 무어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티머시 돌턴의 야성미를 모두 합한 이미지에 레밍턴 스틸의 위트까지 가진 신사 피어스 브로스넌을 제임스 본드로 내세운 17탄 ‘골든아이’(95년)는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소설에서 소재를 가져오지 않은 최초의 007 영화 ‘골든아이’는 디지털 시대에 맞게 구성, 전개됐다. M은 여자(주디 덴치)로 바뀌었고 제임스 본드가 더 강해 보이도록 특수장비를 최소화하고 액션을 강조했다.

19탄 ‘언리미티드’에서는 최초로 여자(소피 마르소)가 악역을 맡았고, 북한과의 갈등을 그린 20탄 ‘어나더 데이’(2002년)는 세계 최고의 수입을 올렸음에도 한국에서 관람 거부 현상을 낳기도 했다. 피어스 브로스넌은 이를 마지막으로 007 무대를 떠난다.

2006년 나온 21탄 ‘카지노 로얄’에서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 가장 근접한 주인공이라는 대니얼 크레이그가 캐스팅됐다. 무뚝뚝하고 생각보다 주먹이 앞서는 다혈질의 젊은 본드는 훨씬 더 강렬한 액션영화를 만들었고 22탄 ‘퀀텀 오브 솔라스’는 박스 오피스 기록을 다시 쓰게 했다.

23탄 ‘스카이폴’은 원래 2011년 11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MGM의 문제로 한동안 제작이 중단되었다가 결국 50주년에 맞춰 개봉하게 됐다.

할리 베리의 주황색 비키니, 황금총, 007가방…
런던 바비칸 센터는 EON 프로덕션과 함께 400점이 넘는 제임스 본드 아이템과 아이디어 스케치, 스토리 보드 등 5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자이닝 007’ 전시를 마련했다. 전시장 입구 긴 복도에는 각국에서 제작된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었고 복도 끝에는 알프스에서 영화 촬영 중 애스턴 마틴 DB5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는 숀 코너리의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차와 함께 전시해 놓았다.

동굴처럼 만든 건 배럴을 지나가면 ‘골드핑거’에서 온몸에 금박이 칠해진 후 살해당한 본드걸을 재현해 놓은 골든 룸이 나타난다. 이 방에는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 사용된 황금총과 총알, ‘골드핑거’ 주제곡을 부른 셜리 배시가 받은 골드 디스크 등 금이 사용된 대부분의 소품을 모아 놓았다.

이언 플레밍의 자메이카 집필실, M의 사무실, Q의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들이 이어졌다. 007 가방과 가짜 여권, 권총, 휴대전화, 카메라 등 소품과 영화 장면 스케치, 소품 아이디어 스케치가 가득했다. 소품들이 사용된 영화 장면들이 대형 스크린에서 흘러나왔다.

다음 방은 근사한 샹들리에가 달린 카지노. 제임스 본드와 본드걸들이 입었던 드레스와 턱시도, 주얼리 등을 마네킹에 입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했다. 1979년 ‘문레이크’의 배경이 되었던 우주공간은 마지막 섹션에 우주복과 함께 따로 모아놓았다.

‘살인번호’에서 우르술라 안드레스가 입었던 하얀 비키니, ‘어나더 데이’에서 할리 베리가 입었던 주황색 비키니, 숀 코너리와 대니얼 크레이그의 수영복이 전시된 유리 박스를 지나면 악당과 수수께끼의 방이 나온다. 악당들의 의상과 무기가 전시된 곳이다.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처음 나온 악당 조스의 금속이빨 등이 눈길을 끌었다.
‘디자이닝 007’ 전시는 토론토로 이어졌으며 향후 3년간 세계 순회전시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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