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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문’이 열리는 26일 오후 3~7시 … 성공하면 10번째 우주클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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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반도 남쪽 바다 작은 섬 외나로도(전남 고흥군)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로우주센터. 가장 가까운 여수공항에서 두 시간 넘게 차를 몰고 가야 찾을 수 있는 외진 곳이다. 고흥반도와 섬을 잇는 다리를 건너고도 굽이굽이 시골길로 찾아 들어가야 한다. 지난 16일 오후 찾은 우주센터. 태극기 펄럭이는 센터 앞으론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고, 마당엔 높이 33m의 나로호 모형이 우뚝 솟아 있었다. 입구는 무장 군경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중이었다.

 우주센터 안에는 오는 26일로 예정된 나로호 3차 발사를 앞두고 고요한 긴장감이 흘렀다. “레이더 원, 준비완료. 레이더 투, 준비완료.” 나로호 발사를 총괄하는 발사체통제센터에선 예행연습이 한창이었다. 발사대에서 2㎞ 정도 떨어진 이곳에선 나로호의 발사 여부와 시간을 최종 결정한다. 발사 15분 전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러시아에서 가져온 1단 발사체(로켓)를 국내에서 개발한 나로호의 윗부분과 연결하는 발사체조립동의 바깥쪽 벤치에는 러시아 기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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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남은 변수는 날씨입니다.” 박정주 발사체추진기관실장은 먼바다를 바라봤다. ‘이번엔 꼭 성공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읽힌다. 그의 눈길은 먼바다에서 파도가 일으키는 하얀 거품을 쫓아갔다. 박 실장은 “하얀 거품이 적을수록 좋다. 그만큼 바람이 약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첨단 과학기술이 총동원된 로켓도 ‘하늘의 허락’을 받아야만 쏘아 올릴 수 있다. 바람이 세거나 비가 내리거나 구름이 많이 끼거나 번개가 치면 로켓을 쏘더라도 정상적인 궤도 진입이 어렵다. 로켓 발사대 옆에 피뢰침 역할을 하는 대형 기둥을 세 개나 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발사 시간대의 선택도 중요하다. 인공위성이 대기권 밖으로 올라갔을 때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날개처럼 생긴 위성의 전지판을 펼쳐 충분한 태양 에너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사 가능 시간대를 ‘하늘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이 시간대는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나로호는 오후 3시30분에서 7시 사이에 발사할 예정이다.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은 “맑은 날이 많은 10월은 1년 중 로켓을 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며 “날씨가 좋은 날은 우주센터에서 20㎞ 넘게 떨어진 여수 돌산도까지 육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만일 발사 예정일인 26일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 27~31일로 발사를 연기할 계획이다.

 

파도가 거품 없어야 … 날씨가 변수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1단 로켓과 상단 부분의 조립을 끝내고 마무리 작업 중인 나로호의 모습.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D-6. 우주를 향한 ‘대한민국의 꿈’을 실은 나로호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나로호 발사에 성공하면 한국은 세계 10번째로 ‘우주클럽’에 가입한다. 자국의 발사장에서 자국의 발사체(로켓)로 자국의 위성을 쏘아 올린 나라여야 우주클럽의 정식 회원이 된다.

 한국의 우주개발은 아직 초보 단계다. 중국과 일본이 훨훨 날고 있다면 한국은 간신히 첫걸음을 뗐다고 할 수 있다. 관건은 로켓 개발 기술이다. 한국은 1992년 8월 우리별 1호 이후 지금까지 10여 개의 위성을 쏘아 올렸으나 모두 외국의 발사장에서 외국의 로켓을 이용한 것이었다. 일본은 42년 전인 70년 2월 자국산 람다 로켓으로 실험용 인공위성 오스미를 쏘아 올렸고, 중국도 같은 해 4월 창쳉 로켓으로 인공위성 둥팡훙 1호의 발사에 성공했다. 소련(현 러시아)·미국·프랑스보다는 늦었지만 영국·인도보다는 빠른 행보였다.

 물론 중국과 일본이 처음부터 우주 강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냉전시대 양대 축인 미국과 소련의 틈바구니에서 심한 견제를 받았다. 로켓 기술은 곧 군사용 미사일 기술로 연결될 수 있어서다. 특히 일본에선 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을 때까지 항공기술에 대한 모든 종류의 연구와 교육이 금지됐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의 항공기술자들은 냄비나 솥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일본 과학자들은 로켓을 쏘아 올린 뒤 대기권으로 다시 들어오게 하는 ‘회수 기술’ 연구는 하지 못했다. 일본이 첨단 로켓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아직 한 번도 유인우주선을 발사하지 못한 배경이다. 사람을 우주에 보내려면 안전한 귀환을 보장하는 회수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중국은 2003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유인 우주선인 선저우 5호를 발사해 안전하게 귀환시켰다.

 두 나라에는 ‘로켓 개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선구자들이 있었다. 중국의 첸쉐썬(錢學森) 박사와 일본의 이토카와 히데오(系川英夫) 박사다. MIT대와 캘리포니아공과대 출신인 첸 박사는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최고의 로켓 전문가였다. 55년 그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가려 하자 정체불명의 요원들에게 납치·감금됐다. 미국 안에선 “첸 박사를 중국에 보내느니 차라리 죽이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총리는 한국전쟁 때 사로잡은 미군 포로들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첸 박사를 귀국시켰다. 도쿄대의 항공우주학 교수였던 이토카와는 패전 후 항공기술 대신 바이올린에 대해 연구하며 시간을 보냈다. 뒤늦게 로켓 연구에 뛰어든 그는 55년 지름 1.8㎝, 질량 230g의 연필 모양 로켓 ‘펜슬’의 발사 실험을 실시했다. 전후 일본에서 최초로 발사한 로켓이었다. 초소형 로켓인 ‘펜슬’ 이후 일본의 우주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해 현재는 높이 53m, 질량 285t의 대형 로켓도 만들어내고 있다.

 

2021년 한국형 로켓 발사 목표

 한국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에 자랑할 만한 로켓 기술을 갖고 있다. 조선 시대에 사용된 다연발 화살인 신기전(神機箭)이다. 신기전은 긴 대나무의 앞부분에 종이를 말아 만든 통을 붙이고 통 속에는 화약을 넣는다. 화약을 넣은 종이통에 불을 붙이면 현대 로켓의 고체연료 엔진과 같은 원리로 하늘로 날아간다.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해서다. 한쪽 방향으로 힘을 주면 그만큼의 힘을 반대방향으로도 받게 된다는 물리학 법칙이다. 조선 시대에 뉴턴을 알았을 리는 없지만 신기전은 선조들이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30년(1448년) 신기전에 대한 언급이 처음 등장하고, 중종 17년(1522년)과 18년(1523년) 왜구를 물리치는 데 신기전을 활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일본의 ‘펜슬’ 로켓에 비하면 신기전은 600년이나 앞선 것이다. 하지만 신기전의 로켓 기술은 후세에 계승되지 못했다.

 현대 한국의 우주개발은 9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화된다. 첫 위성은 92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영국 서레이대의 기술을 전수받아 제작한 42㎏급 소형인 우리별 1호였다. 지난 5월에는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최초의 위성인 아리랑 3호(980㎏급)를 일본 다네가시마 발사장에서 쏘아 올렸다. 20년 만에 위성 기술의 자립에 성공한 것이다.

 나로호 발사가 성공한다면 한국의 위성을 한국의 발사장에서 한국의 발사체로 우주에 보내는 첫 사례가 된다. 나로호 윗부분에는 100㎏급의 나로과학위성이 탑재돼 있다. 나로호의 핵심인 1단 로켓은 산소가 희박한 곳에서도 연료인 등유(케로신)를 태울 수 있게 액체산소를 이용한다. 액체산소는 영하 183도 이하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은 아직 나로호 수준의 액체연료 로켓엔진을 개발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2억 달러(약 2200억원)를 주고 러시아 기술로 만든 1단 로켓을 그대로 가져왔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껍데기(차체)는 국산인데 엔진을 비롯한 핵심 기술과 부품은 외국산인 셈이다.

 박 실장은 “국내 자동차 산업도 외국산 엔진과 부품을 들여와 조립·생산하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한국을 세계 5대 자동차 강국으로 만들었다”며 “우주개발도 출발 단계에선 선진 외국 기술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09년 8월 1차 발사 때는 이륙 후 3분36초가 지난 뒤 위성을 보호하는 덮개(페어링) 두 개 중 한 개가 분리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이에 따라 위성이 균형을 잃고 속도가 느려져(초속 6.2㎞) 정상 궤도에 들어가지 못하고 떨어져 버렸다. 위성이 지구 둘레를 돌려면 제1 우주속도(초속 7.9㎞)를 유지해야 한다. 이보다 빠르면 지구 궤도 밖으로 튕겨 나가고, 느리면 지상으로 추락한다.

 2010년 6월 2차 발사 때는 이륙 후 2분16.3초가 지난 뒤 1차 충격(진동)이 발생했고, 다시 1초 뒤 2차 충격으로 내부 폭발이 발생했다. 실패 원인에 대해선 한국과 러시아 측의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은 러시아에서 만든 1단 로켓에 문제가 있었다는 입장이지만 러시아는 한국이 책임지는 2단 로켓의 자폭장치(비행종단시스템)가 오작동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이번 3차 발사에선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위성 덮개를 분리하는 시스템을 안정적인 저전압으로 바꾸고, 2단 로켓의 자폭장치를 아예 제거했다. 러시아도 1단 로켓을 2단과 분리하는 장치의 성능을 높이고 엔진과 연료 계통의 검사도 철저히 했다고 한다. 3차 발사로 러시아에 추가로 주는 돈은 없다고 항공우주연구원은 설명했다. 이번 발사를 포함, 정부의 나로호 프로젝트 총예산은 5205억원이다.

 민 센터장은 “같은 과정을 세 번째 반복하면서 우리 연구원들이 1, 2차 때는 잘 모르고 지나갔던 부분을 확실히 알게 됐다”며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나로호 발사는 우주를 향한 원대한 계획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이것을 디딤돌로 100% 한국형 로켓을 개발해 2021년 쏘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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