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우리 모두가 닷컴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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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시대 초기의 닷컴 권위자들은 인터넷의 위력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심지어는 구질서를 전복시켜 새로운 “인터넷 경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웹 관련 주식의 거품이 붕괴되면서 그 시대는 덧없이 끝나버리고 반란이 실패로 끝났으며 반란군은 사망하고 동조자들은 자신들이 늘 구경제 지지자였던 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많은 혁명적인 말들이 과장돼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닷컴 세력은 몰락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 그렇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지만 사실 닷컴은 구경제에 흡수되고 있는 것뿐이다.

닷컴 붕괴의 교훈은 인터넷상에서 먹혀드는 것도 있고 먹혀들지 않는 것도 있다는 점이 아니라 인터넷 기업과 비인터넷 기업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일류기업에서부터 그 증거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세계적으로 자산 가치가 가장 크고 존경받는 회사로 대기업 구조를 지니고 있어 닷컴식 사고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을 살펴 보자.

GE는 뒤늦게 인터넷을 받아들였다는 비판을 듣긴 했지만 오늘날에는 GE·고객·부품공급업체 간의 새로운 중개상 역할을 담당할 온라인 시장을 구축했다. 이는 많은 신생회사들이 떠들어댄 전자상거래(B2B) 시장의 변종이지만 GE는 옛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로 이를 구축했다.

아마도 이는 초기의 B2B 몽상가들이 떠들어댔던 것처럼 개방적이고 구매자·판매자 모두에게 비용 부담이 없을 정도로 혁명적이지는 않지만 GE는 2001년 이 방식을 통해 2백억달러 규모의 판매와 구매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 수치를 보면 결코 망한 사업이라고는 할 수 없다.

현재 조롱감이 되고 있는 닷컴 ‘문화’의 상당수가 주류로 흘러들었다. 맞는 말이다. 미니 축구대와 코걸이는 더 이상 닷컴 호황기에 누렸던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됐다. 닷컴 열풍이 불던 당시에는 놀랄 만큼 많은 수의 중견 간부들이 넥타이를 풀어헤치는 것이 성공적인 주식공개(IPO)의 비결이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닷컴 기업가들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생각들이 ‘미국 주식회사’에 뿌리를 내렸다. 대기업들조차 다시 개인의 진취성과 기업가 정신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됐다는 점이 한 예다. 또 다른 예는 최고의 아이디어들이 조직구조상의 여러 단계를 거치게 하는 대신 재빨리 실무에 적용될 수 있도록 기업구조가 수평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또한 인터넷 기업정신의 일부인 고객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도 모든 종류의 회사에 도입됐다.

마지막으로 항공산업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인터넷 시대의 가장 존경받는 선각자는 프라이스라인社의 제이 워커였다. 그의 회사는 손대는 사업마다 혁명을 약속하는, 매우 공격적인 경영법을 구사했다. 항공권 판매부터 시작한 워커는 만사가 순조로울 경우 거의 모든 품목을 판매할 계획이었다.

물론 만사가 순조롭지는 않았다. 불안정한 웹 관련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하자 워커는 가장 크게 손해본 사람 중 하나였다. 굴욕적인 보도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의 벤처기업 중 한곳이 망했고 워커의 순자산은 75억달러 준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그가 잘못만 한 것인가. 잘못한 점도 있겠지만 항공권 구입 고객들이 인터넷을 받아들일 것으로 추정한 것은 분명 잘못이 아니다. 이 치열한 업계에서 가장 큰 사업 수완을 발휘하는 듯이 보이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이제 자사가 웹을 통해 판매하는 항공권이 무려 30%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우스웨스트를 오랫동안 경영해온 사람은 사이버 세계의 몽상가가 아니다. 그는 과장된 신경제 이론과는 상관이 없는 허브 켈리어(70)다. 요점은 옛 이론이 새 이론을 꺾었다는 것이 아니라, 옛 이론가가 새 이론가의 각본에서 한 페이지를 취했기 때문에 옛 이론가가 이기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혁명이 끝났고 인터넷 권위자들이 패배했다는 생각 속에는 바로 그 점이 누락돼 있다. 최근 몇달 동안 우리는 거품 붕괴를 고소해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워커 같은 이들을 조소하는데 어리석을 정도로 많은 힘을 쏟았다. 그러나 프라이스라인 같은 닷컴 회사들의 미래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 닷컴의 경계는 사라질 것이다. 인터넷은 단지 구경제의 진보를 의미할 뿐이다. 니체는 기독교적 ‘양심’이 사회 깊숙이 뿌리내렸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스스로 인식하건 못하건 모두가 기독교도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가 알건 모르건 모두가 닷컴人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질서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에서 이 모든 것은 혁명가들의 상상과는 다르게 진행돼 왔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혁명의 한가지 문제점이다. 혁명가는 때로 이겨놓고도 지는 것이다.

Robert Walker
(필자는 美 뉴올리언스 소재 슬레이트닷컴의 기고가)

자료제공 : 뉴스위크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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