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첨단 시스템보다 보안의식이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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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강현
사회부문 기자

처음엔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발생한 60대 남성의 방화·투신 사건을 계기로 정부기관의 보안 실태를 점검해보자는 기획을 낼 때만 해도 “기사가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더구나 김황식 국무총리는 15일 “주요 공공시설의 경비·보안 관리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시까지 내렸다. 총리는 정부 청사가 뚫린 데 대해선 “매우 유감”이란 표현도 썼다.

 전날 중앙청사에서 큰 사고가 난 데다 총리의 단호한 지시까지 있었으므로 국가기관의 보안 시스템이 한층 강화됐을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절반의 믿음은 반나절 만에 산산이 깨졌다.

 이날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본지 취재진은 국가 주요 기관의 보안 상태를 긴급 점검했다. ▶국회 ▶과천 정부청사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지법 ▶서울지방경찰청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7곳이다. 점검에 나선 기자들은 해당 기관의 출입 기자가 아니었다. 출입증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기관에 들어갈 경우 당연히 제지를 받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7곳 모두 별 어려움 없이 출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들어가는 공무원들을 뒤따라 들어가자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물론 방호원들은 입버릇처럼 “출입증을 패용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출입증을 요구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단 한 곳에서 출입증 제시를 요구받았지만 “출입증을 사무실에 두고 왔다”고 둘러대자 무사 통과할 수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취재진이 점검해본 국가기관은 대부분 스피드 게이트나 보안 검색대, 스크린 도어 등 첨단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뛰어난 시스템도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방심할 경우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된다. 실제로 일부 기관에선 출입증을 찍어야만 통과되는 스피드 게이트를 출입자가 많다는 이유로 아예 열어두고 있었다. 보안 검색대에서 ‘삐~’ 소리가 나더라도 이를 확인하는 방호원은 드물었다.

 본지는 취재 목적으로 국가기관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테러 등 범행 의도를 가진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잠입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최근 이른바 ‘노크 귀순’한 북한병사에 의해 전방 GOP(경계초소)가 뚫려 군이 질타를 받고 있다. 군은 과학화경계시스템을 도입하겠다면서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을 과학화하고 최신 보안설비를 설치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고를 막는 건 첨단 보안 시스템이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공무원 개개인의 확고한 보안 의식이다.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