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바둑판을 점령한 ‘90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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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본선 32강전)
○·이세돌 9단 ●·구리 9단

제4보(30~42)=이세돌·구리 두 사람이 32강전의 최고령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83년생이니까 불과 29세인데-만으로는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벌써 노장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14~16세의 어린 강자들, 소위 ‘90후’들이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벌떼처럼 등장한 탓이지요. 한데 처음엔 흥미로웠던 이들의 등장이 점차 이상하게 다가오네요. 인생의 경험이 묻어나야 할 바둑인데 그 바둑판을 14~16세 소년들이 점령한다면 ‘인생’이란 두 글자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지 자못 심각해집니다.

 구리 9단도 올해 중국 내에서 ‘90후’들에게 혼이 나는 바람에 랭킹이 10위까지 밀렸습니다. 이세돌 9단도 16세 판팅위에게 지는 등 수모를 겪었지요. ‘세계 바둑의 쌍두마차’가 어느덧 동병상련의 처지가 되었는데 32강전에서 또 이렇게 딱 만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최고의 화제국이 되었고 ‘TV 방송용’으로 지목돼 다른 기사들과 뚝 떨어져 따로 대국하고 있는 거지요.

 ‘붙이면 젖혀라’가 오래된 격언이지만 요즘엔 ‘붙이면 끼워라’도 있습니다. ▲에 대한 30이 바로 그 끼움인데요, 박영훈 9단의 설명에 따르면 흑은 ‘참고도’처럼 막아 두는 게 보통이랍니다. 두터움을 유지하는 평화로운 그림이지요.

 구리 9단은 31, 33, 35로 갈라버렸습니다. 적진을 관통하는 것은 참 통쾌한데요, 문제는 백에도 36의 절단이 있다는 거지요. 이 때문에 39, 41로 움츠려야 하고 42의 좋은 수를 허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괴로움을 뻔히 내다보면서도 ‘관통’을 관철한 데서 구리의 호전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가 이세돌이라 하더라도 한판 해보자는 거지요.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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