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역이민이 많아지는 강소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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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무현 형.

아직은 당선자 신분임을 틈타 슬쩍 형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저는 형과 일면식도 없지만 새해 벽두에 한번 살가운 대화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 한민족 최고의 국운 상승기

지난 대선 때 조금 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A가 대통령이 되면 이민가겠다""B가 되면 이민가겠다"고 했던 사람들이지요. 형을 아주 싫어했던 사람들이 과연 이민 준비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를 반대한 사람들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형의 말이 현실화돼 그들이 역동적인 이 강토를 떠나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형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돌파가 불가능해 보인 난관들을 뛰어넘어 '천운이 따른다'는 평가도 들었지요.

제가 보기에 한민족은 새 천년에 단군 이래 최고의 국운 상승기를 맞았습니다. 정보기술(IT)시대와 맞물린 이 민족적인 대운과 형이 가진 듯한 천운이 5년간 오케스트라를 이루기를 바라는 것은 한갓 꿈일까요.

북한 핵, 경기 침체 기미 등을 비롯해 한반도 곳곳에 어두운 구석들이 많은데 국운 상승기라니. 이런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많겠지요. 한국인들은 지난 1백여년간의 고난 탓으로, 스스로 성취해 놓은 것도 인정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두뇌회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성취에 자부심을 가질 때입니다. 조선조 말 개항 후 일본의 산업은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일 뿐 추월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우리는 1차로 인터넷 비즈니스에서 일본을 제쳤습니다. 조선조 말 2백명 정도의 일본군에게 궁궐을 유린당하던 보잘것없던 국력의 나라가 이렇게 성장한 것입니다.

매사에 극성인 민족성 덕에 한국은 이제 D램 반도체, CDMA 휴대전화, 선박 수주 잔량, 초박막 액정표시장치 등에서 세계 1위(무역협회 조사)입니다.

인구 1천명당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수와 인터넷 쇼핑몰 이용률도 각각 세계 1위, 2위지요. TV 생산 세계 2위, 화섬 4위, 자동차 5위, 철강 생산 6위 등 제법입니다.

21세기형이라 할 엔터테인먼트 산업, 감성 산업, 뷰티산업 등에서도 국제경쟁력이 쑥쑥 크고 있음을 느낍니다.

게다가 한국의 여성들은 맹렬한 기세로 사회활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여성인력을 제대로 쓰는 국내 진출 다국적 기업의 사례에서 우리 여성들의 경쟁력은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그동안 소중하게 쓰지 않았던 여성인력의 가세가 본격화하면 국력이 지금의 두배가 될지도 모릅니다. 여기에다 감각과 에너지를 지닌 2030 세대의 등장도 큰 응원군입니다. 나아가 세계의 중심축은 이미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겨왔습니다.

*** 민족 강점 살리기 본격화를

이 상황에서 형이 할 일은 함대의 방향타를 잡고 장애물을 제거하며 우리의 강점을 더 살려나가는 작업일 것입니다. 이해의 갈등을 조정해야 하므로 아주 고통스런 항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올해는 한국인들의 미주(美洲)이민 1백주년입니다. 형의 임기가 끝날 때쯤엔 한국의 삶의 질과 역동성을 보고 역(逆)이민을 결심하는 교포들이 생기기를 기대해봅니다.

'국민들이 이민갈 생각을 하지 않는 강소국(强小國)을 만들어달라'는 골치 아픈 주문장을 보냅니다. 형을 큰 머슴으로 '고용'한 국민들이 매서운 눈으로 지켜볼 것입니다.

김일 생활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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