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통합하자는데 물병·욕설 … 폭력은 해법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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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정치부문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14일 오전 이북5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해 “함경도 (출신) 아입니꺼(아닙니까)”라며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의 부모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 피란민이다. 그러자 빨간색 옷을 입은 20여 명이 “함경도 빨갱이 물러나라” “종북세력 물러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몰려왔다. 이들은 문 후보가 가는 곳을 따라다녔다. 곳곳에서 “이 ×××야” “빨리 지나가라”는 욕설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급기야 문 후보가 운동장으로 내려와 인사를 할 때 관중석에서 서너 개의 물병이 날아들었다. 문 후보는 맞지 않았지만, 뒤에서 취재 중이던 여기자 한 명이 물병을 이마에 맞아 멍이 들었다. 문 후보 뒤쪽에서 누군가 물을 뿌려 그의 안경에 물방울도 튀었다. 문 후보는 끝까지 행사장을 돈 뒤 참석한 세 후보 중 가장 늦게 경기장을 빠져나갔으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도 냉대를 받긴 마찬가지였다. 한 노인은 ‘어리버리한 안철수’라는 내용의 글이 담긴 종이를 들고 안 후보 일행 쪽에 난입하려 했다. ‘개××’ 등의 욕설도 있었다. 정지욱 함경남도 체육회장은 행사장에 들어선 안 후보에게 “실향민 대책은 무엇이냐”고 따지듯 물은 뒤 안 후보가 “북한과 대화해서…”라고 답하자 “종북 좌파와 가까이하려면 이 자리 올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지난 8월 28일 ‘전태일 다리’에 헌화할 때 현장에 있던 이들이 “독재자의 딸”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쳤다. 박 후보 측에선 현재 과거사와 화해의 일환으로 오는 16일 부마항쟁 기념식 참석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그땐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이날 문 후보에 대한 피켓 시위와 야유의 현장을 지켜본 한 60대 실향민은 “저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모두가 다 저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1991년도에 벌어진 정원식 총리 밀가루 세례 사건처럼 상대 진영에 대한 과도한 행위가 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날아다니는 ‘물병’은 사라져야 한다. ‘욕설’도 마찬가지다. 둘 모두 명백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어떤 일에도 해법이 될 수 없다.

 그간 박 후보는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문 후보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안 후보는 조용경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등 상대 진영의 사람을 끌어들여 국민대통합이란 과제를 맡겼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음이 드러난 하루였다. 역대 어느 대선 때보다 국민대통합이 과제로 떠오른 이번에 왜 아직도 물병이 날아다니는지 각 후보 진영도 성찰해야 한다. 자기 진영만의 대통령이 되려 한 적은 없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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