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학원생은 교수의 몸종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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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석·박사 학생들이 교수의 몸종 취급을 당하는 사례가 10일 서울대 인권센터 자료집에서 공개됐다. 출장 떠난 교수 집에 찾아가 애완견의 밥을 챙겨주고, 교수 이삿짐을 나르는가 하면, 교수 아내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등 온갖 잡무를 처리하는 게 이들의 일이라고 한다. 폭언·욕설·성 비하 발언에 시달리는 학생도 적잖았다. 조사 대상 대학원생 1300여 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교수들의 부실한 수업으로 피해를 봤다고 응답했으며, 일부 학생은 교수 논문을 대필하거나 감사비 명목으로 선물 제공을 강요받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런 몰지각한 교수들의 전횡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우리 대학사회는 이를 사제(師弟)관계라는 이름으로 방치해 왔다. 교수는 지도 학생의 논문 심사, 학위 수여, 유학을 위한 추천서 작성 권한을 쥐고 있기에 교수의 부당한 요구에 항의하는 학생은 대학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스승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가 수년간 졸업을 거부당한 학생의 사례도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 교수와 제자는 평등해야 하며, 상호 비판을 허용할 수 있어야 업적도 기대할 수 있다. 인권센터가 공개한 이런 주종(主從) 관계에서 제자가 학문적으로 스승을 딛고 올라서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상하관계에 찌든 학생들이 교수가 되면 이들 역시 당연한 듯 제자들을 몸종처럼 부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서울대 측은 대학원생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단과대학 등과 협의해 학칙 개정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규정을 고치고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교수사회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쥐고 있다. 무엇보다 교수들이 자신의 석·박사 학생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인식과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대학원생은 교수의 연구와 수업을 보조하는 존재일 뿐 사적인 일을 처리하는 비서나 몸종은 아니다. 오히려 제자를 공동의 연구 목표를 갖고 있는 학문적인 파트너 관계로 보는 게 맞다. 공사 구분 못하는 일부 교수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