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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은 알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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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나의 애칭은 NLL입니다. 서해 북방한계선이란 긴 이름으로도 불리죠. 1953년 8월 30일생이니 내년이면 환갑이군요. 그런 저를 두고 요즘 시끄럽습니다. 꼭 5년 전 남북 정상회담이란 데서 한국 대통령과 북한의 국방위원장이란 분들이 ‘땅 따먹기’니 뭐니 하며 저를 들먹였다는 겁니다. 당시 녹취록을 분명히 봤다는 사람과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는 당시 회담 배석자들 사이에 명운을 건 한판 승부가 벌어질 기세입니다. 국정조사 얘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잘못하다간 긴 몸을 추슬러 제가 뭍으로 올라야 할 듯합니다. 증인으로 채택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다녀와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명세를 치르는 건 기분 나쁘지 않지만 제 출생에 무슨 문제나 비밀이 있는 듯 의심하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알다시피 제 아버지는 유엔군 사령관을 지내신 마크 W 클라크 대장입니다. 아빠 혼자 일방적으로 애를 낳았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어머니는 ‘공산 측’이라 불리는 북한입니다. 6·25 정전협상에서 아빠는 국제관행에 따라 3해리 연해수역(coastal waters)으로 하자 했고, 엄마는 12해리를 주장했습니다. 그때 엄마는 바다까지 지킬 힘이 없어 ‘해상 봉쇄’니 뭐니 걱정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결국 해상경계선 조항은 전면 삭제하자고 나섰죠. 아빠는 이를 받아들여 줬고 유엔군에 ‘이 선을 넘어 북으로 더 올라가지 마라’고 그어놓은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인 저 NLL이 남북 간 해상경계선으로 재탄생한 겁니다.

 중요하고 고마운 건 엄마·아빠가 저를 애지중지 키웠다는 겁니다. 물론 요즘 엄마는 저를 낳지 않은 듯 말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96년 9월에는 제 밑으로 선을 하나 그어놓고는 아빠에게 ‘새 자식이니 인정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제가 친자식인 건 엄마가 더 잘 아실 겁니다. 제가 6세이던 59년 11월 엄마가 만든 『조선중앙연감』이란 책에는 제가 남북 간 군사분계선으로 등장합니다. ‘공화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연감이라니 믿을 만하지요. 제 호적인 셈입니다. 또 31세 때인 84년 엄마가 수해를 입은 한국에 구호물자를 보낼 때도 배를 넘겨받는 기준점이 된 건 저였습니다. 지난해 3월 표류했던 북쪽 주민들을 넘겨줄 때도 저를 가운데 두고 인수인계가 벌어져 TV 출연을 하기도 했죠.

 물론 제가 미덥지 않아 튼실한 동생 하나 더 두겠다고 한다면 서운하지만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미 92년 남북 기본합의서란 데서 동생 만들기 구상은 슬쩍 선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양측이 합의해 해상경계선을 확정할 때까지는 NLL을 실질적 분계선으로 한다”는 대목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 주세요.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서해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지만 저를 둘러싼 논쟁은 뜨거워집니다. 마지막 이 말만은 꼭 드리고 맺겠습니다. 온갖 격랑에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켜온 저를 제발 더 이상 흔들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