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키우려면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을 떠올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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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제임스 다이슨이 날개 없는 선풍기 ‘에어 멀티플라이어’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다이슨]

“주변을 자세히 살펴봐라. 무엇이 나를 귀찮게 하는가 떠올려라. ‘좀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물어라.”

 제임스 다이슨(65·사진)에게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날개 없는 선풍기, 먼지봉투를 없앤 청소기 같은 혁신적인 가전제품을 세상에 내놓은 영국의 발명가이자 엔지니어, 창업자다. 1993년 자신의 이름을 딴 가전회사 다이슨을 창업해 고정관념을 깬 제품을 여럿 선보였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세련된 디자인 때문에 ‘가전업계의 스티브 잡스’로도 불린다.

 지난달 영국 런던에 있는 왕립예술대학(RCA)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이곳 모교에 500만 파운드(약 90억원)를 기부해 건립한 다이슨빌딩 개관 행사에서다. 그는 창의적인 제품을 내놓기 위해 기업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로 시장조사에 의존하는 점을 꼽았다.

 “시장조사는 기껏해야 ‘고객이 아마도 이런 것을 원할 것’이라는 추측밖에 얻을 수 없어요. 대개 틀리기도 하고요.”

 그럴 시간에 기술력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해 혁신적인 상품을 내놓는 것만이 기업이 살 길이라는 것이다. 다이슨은 주력 제품인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예로 들었다. 79년 잠시 직장을 잃고 집에서 쉴 때였다. 청소기를 돌리다가 그를 ‘귀찮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청소기가 먼지를 잘 빨아들이지 못한 것. 봉투가 차면 흡입력이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집 창고에서 5년간 연구한 끝에 세계 최초로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개발했다. 공기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원심력으로 먼지를 분리해 내는 원리다. 하지만 발명품을 들고 가전회사를 찾아갔을 때 문전박대를 당했다. “아무도 봉투 없는 청소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었다. 날개 없는 선풍기 역시 “위험하고, 청소기하기 힘들고, 심지어 바람까지 약한데 선풍기에 날개가 꼭 있어야 할까”라는 의문에서 탄생했다.

 다이슨은 “소비자들이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가치를 주는 상품은 기술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런 기술이 나오면 고객을 끌어당기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인터넷으로 세계가 더 가까워져 이젠 좋은 제품이기만 하면 알리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알아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는 브랜드보다는 기술을 더 빨리 인식한다”며 “제품의 성공은 브랜드나 광고가 아니라 ‘이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가름 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경제위기에 오히려 더 성장했다. 지난해 10억6000만 파운드(약 1조8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2010년보다 20%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3억630만 파운드(약 5453억원)로 30% 늘었다.

 그는 “오래된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 매력을 느껴 엔지니어가 됐다”고 했다. 한때 회장이란 직함도 가졌으나 2010년부터 ‘최고 엔지니어’로 돌아가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다이슨 직원 4000명 중 1500명이 과학과 개발 분야에 있다.

 다이슨은 창업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순간이고 쉽지만 그걸 현실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며 “모든 실패에서 배울 수 있으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들 때 5126번 실패한 끝에 성공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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