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빈곤퇴치 위해 한국 성장모델 배울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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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 수장이 된 뒤 처음 방한한 김용 총재가 9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한 뒤 대담하고 있다. [사진 매일경제신문]

“고향에 돌아오니 정말로 기쁩니다. (이 연설이) ‘강남스타일’은 아니지만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김용(53) 세계은행 총재가 유창한 한국어로 연설을 시작하자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가 세계은행 총재 후보자로서 지지를 구하기 위해 방한했던 게 지난 4월. 세계은행 총재 신분으론 9일 첫 방한이다. 이날 매일경제 주최 ‘제13회 세계지식포럼’에서 그는 ‘지식을 통한 번영 추구 및 빈곤퇴치’를 주제로 영어 기조연설과 질의응답을 했다.

 이 자리에서 김 총재는 “앞으로 한국의 성장모델을 배우길 기대한다”며 “한국과 세계은행이 (빈곤퇴치를 위한) 효과적인 전달체계를 공동으로 개발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국 정부와의 협력방안을 묻는 빔 콕 전 네덜란드 총리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다음 주 이명박 대통령 등 한국 지도자를 만나 심층적으로 얘기할 예정”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김 총재는 배울 만한 한국 성장모델 중 하나로 새마을운동을 꼽았다. 김 총재는 최근 에티오피아를 방문했을 때도 그 나라 장관으로부터 “새마을운동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김 총재는 “당시엔 도시화가 당연하다고 봤는데, 농촌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라며 “도시와 농촌을 동시에 개발하는 균형적인 접근법도 새마을운동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대로 한 나라에 대해 희망이 없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걸 한국에서 배웠다”고도 했다. “1950년대 말, 많은 개발전문가가 유교문화인 한국은 ‘망할 수밖에 없다’ ‘구제불능’이라고 했다. 하지만 20년 뒤 한국이 성장하자 ‘유교문화 덕분’이라고 말을 바꾸더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그렇다고 젊은 여공이나 관료, 기업가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를 축소시키고 ‘유교문화 때문’이라고 단순화해서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북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김 총재는 아버지 얘기부터 꺼냈다. “제 아버지도 북한이 고향이다. 17세 때 월남해 가족을 다시는 못 만났다. 내 사촌이나 고모들이 지금 북한에 사실 수도 있다. (나는) 의사로서 북한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는 “세계은행은 도로를 깔아주고, 전력이나 교육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잘한다”며 “북한이 세계은행에 요청하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돕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용 총재는 다섯 살 때 미국 아이오와주로 이민했다. 하버드대에서 의학과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 의대 교수,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 담당 국장을 지냈다. 2009년엔 다트머스 대학 총장에 취임하며 ‘아시아계 최초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 기록을 썼다. 이날 포럼에선 어머니 전옥숙(79) 박사도 연사로 나섰다. 전 박사는 퇴계학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다. 김 총재는 기조연설 서두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학습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신 분”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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