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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누구나 벗으면 알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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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양선희
논설위원

옷을 벗으면 누구나 알몸이 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옷 입고 사는 걸 정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옷을 벗지 않을 뿐이다. 또 상식적인 사람은 정상적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수치스러움을 느껴 알몸으로 돌아다니지 않고, 사적인 영역에서만 옷을 벗는다. 이런 사회에선 남의 알몸을 탐하거나 훔쳐보는 것이 비도덕적·불법적 행위로 간주된다. 그런데 벗으면 제 몸이나 남의 몸이나 다를 바 없는 알몸인데도 남의 몸, 특히 여성의 가려진 속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망은 왜 이리 넘치는지 약삭빠른 자들은 남의 몸으로 장사를 한다.

 유럽에선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의 수영장 노출 사진을 놓고 여전히 설왕설래 중이다. 이 사진은 자기 집 수영장에서 옷을 벗고 있는 장면이다. 지난달 중순 프랑스와 이탈리아 잡지가 이 사진들을 게재한 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매체들이 표지사진을 캡처해 보도했으니 대략 세계로 쫙 퍼졌다. 실은 이 내용을 추석연휴에 한동안 뜸했던 인터넷 검색을 몰아서 하다가 ‘뒷북’으로 보았는데, 유럽 매체들은 아직도 이 문제의 후폭풍 속에 있는 듯했다.

 이 보도를 둘러싼 법적공방 와중에도 사진을 실은 매체 담당자는 “미들턴은 자신의 몸매를 자랑스러워해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단다. 한데 사적인 공간에서는 누구나 옷을 벗을 자유가 있다. 이를 침해하지 않는 것은 사생활 침해를 금하는 법적 문제일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아무리 ‘황색 저널리즘’이라지만 이런 기본적 예의도 지키지 않고 ‘몸매’ 운운하다니…. 사진으로 테러해 놓고, 울화통까지 터뜨려 죽이자는 심사인지, 내 원참.

 실제로 여성의 알몸 사진은 해당 여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테러무기다. 지난여름 성폭행당한 뒤 자살한 충남 서산 피자집 아르바이트 여대생의 자살을 기억하는지. 당시 여대생을 성폭행했던 피자집 사장은 그녀의 사진을 찍고, 이를 가지고 협박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성폭행당하고, 나체 사진을 찍히고, 자기 사진으로 협박까지 당한 피해자는 자살했다. ‘무슨 자살까지…’라는 생각에 딱하지만, 그동안 몸이 노출된 여성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보면 어린 여대생이 이런 사진이 공개된다는 공포를 견디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엔 몇 차례의 연예인 섹스비디오 사건이 있었다. 사적 공간에서 벌어진 지극히 사적인 행위가 동영상으로 공개됐던 사건들이다. 이를 통해 세간의 조롱과 비난을 받으며 막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상대 남성이 아니라 피해여성이었다. 이는 벗은 여성은 무조건 선정적이고 음란하게 보는 편벽고루한 시각 때문이다. 이번 영국 왕세손비의 경우도 남편인 윌리엄 왕세손과 함께 벗고 있었다. 그런데 공격은 왕세손비에게 집중됐다.

 ‘선정성’에 대한 시각은 대단히 편협하다. 지난해 온라인 중앙일보는 러시아 프리다이버 아브세옌코 박사가 흰돌고래와 인간의 교감을 실험하기 위해 영하 2도의 북극바다에 알몸으로 뛰어들었던 사진을 국내 언론사 중 처음으로 게재했다. 이튿날 조간들도 이 사진을 실었다. 이는 박수를 받아야 할 용감한 도전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네이버 캐스트에 걸었을 때 네이버 독자 모니터링단은 즉각 ‘사진이 선정적’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용기 있는 과학적 도전이 단지 옷을 벗었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선정적’이라고 몰린 것이다. 이를 모니터링단의 단순무지함 탓으로만 돌리기도 어렵다. 이는 여자의 알몸은 무조건 선정적이라고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이렇게 불리하다. 자기 몸 때문에 성폭행·성추행 등 공격 대상이 되고, 단지 노출만으로도 풍속을 해친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면서 그를 훔쳐보려는 호기심과도 싸워야 한다. 이는 ‘여성의 몸’이 잘못한 게 아니다. 벗으면 누구나 똑같은 몸을 온통 선입견에 꽉 찬 빗나간 시각으로 보고 이를 성적 도구화하려는 게 잘못된 거다. 이 ‘몹쓸 선입견’을 어떻게 뜯어고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