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군대'서 찾은 희망 '가우데아무스' 내한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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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최상급 연극 한편이 국내에 선을 보인다. 러시아 현대극을 대표하는 연출가 레프 도진(57) 의 '가우데아무스(Gaudeamus) ' 다. LG아트센터가 7월 6~10일 자체극장에서 초청 공연한다.

이 작품은 러시아 소설가 세르게이 칼레딘의 1988년 작 '건설부대' 가 원작이며, 90년 러시아에서 초연됐다. 도진은 현재 명문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 예술감독. 연극 연출 뿐만 아니라 오페라 연출가.연극 교육자로 유럽에서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유럽지역 최고상인 '유럽연극상' 을 탔다. 이 상의 수상자 목록에는 연극 연출가인 피터 브룩(영국) .로버트 윌슨(미국 출신으로 유럽서 활동) .아리안느 므누슈킨(프랑스) 과 안무가인 피나 바우쉬(독일) 등 기라성 같은 공연 예술가들이 올라 있다.

제목 '가우데아무스' 는 중세부터 전해오는 러시아 학생들의 '젊음 예찬가' 로 피날레 곡이기도 하다. 실존의 문제를 다룬 작품의 무게에 비해 제목은 낭만적인데, 이는 이 작품의 주제와 닿아있다. '가우데아무스' 에 대한 도진의 자평(自評) 이다.

"나는 인간이란 잔인하고 악한 일들을 행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동시에 인간은 신이 창조한 신성하고 고결한 존재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일깨우려 한다. " (94년 '뉴욕커' 인터뷰)

작품의 무대는 옛 소련의 '개방(글라스노스트) ' 전 '레드 아미(붉은 군대) ' 의 한 건설부대다.

이 곳은 몸뚱이 하나로 버티는 전과자.약물 중독자 등 쓰레기 인생들의 집합소다. 소련 정부로부터 탄압받은 소수 민족 출신도 더러 섞여 있다. 이들은 부조리한 현실을 벗어나려고 몽상과 성적(性的) 탐닉에 몰두한다.

연극은 이같은 인생들이 19개의 에피소드로 그려내는 폭력과 부패, 소외와 억압의 파노라마다. 앞서 자평 속에 드러난 도진의 계몽적.목적론적인 연극관에 비춰 이 연극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불굴의 낙관주의와 자유, 그리고 희망이다.

그러나 묵직한 주제의식과 달리 연극은 번잡스러우며, 때로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는 게 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극 안에는 발레.성악.연주.아크로바틱(체조) 등 훈련된 배우들에게 요구되는 모든 기량이 총집합돼 있으며, 열정과 환희의 상승 순간과 차갑고 응축된 하강 순간이 교차한다" (이진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 연극원 박사과정) .

탈(脫) 장르의 총체극임이 엿보이는 대목으로, 도진은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연극원 학생들과 다년간의 실험을 통해 이를 완성했다. 물론 그 바탕은 소련 연극의 육화(肉化) 한 전통과도 같은 스타니슬라브스키(1863~1938) 의 연기 방법론, 즉 고도의 훈련을 통한 조건반사적인 역할 창조법이다. 도진은 이 전통 위에 현대 감각의 실험적이며 진보적인 연극관을 가미해 '가우데아무스' 를 명작으로 빚었다.

연극원 김윤철(연극평론가) 교수는 "감탄은 있지만 감동이 없는 게 (국내외) 현대 연극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 라며 "그러나 도진의 연극은 여기에 거리를 두며 연극의 본질적 기능을 회복시켜 감동을 생산한다" 고 말했다. 김교수는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도진의 또 다른 대표작 '집' 을 관람했다.

도진은 한국 초연에 앞서 "경색되고 폐쇄적인 군대 생활을 경험한 한국 젊은이들도 '가우데아무스' 안에서 자신과의 공통된 정서를 찾을 수 있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

공연시간은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3시30분.7시30분, 일 오후 6시.

(http://www.lgart.com),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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