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과학입국 못하면 미래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한국의 과학자들이 의욕을 잃고 있다. 이 때문에 미래 발전을 견인해야 할 과학기술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본지가 창간 47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탐사보도 시리즈 ‘과학입국 이대론 미래 없다’에서 보도한 충격적인 상황이다. 국내 293명, 재미 226명의 과학자를 심층 설문조사 했더니 국내 과학자의 72%가 연구 풍토와 환경이 좋은 선진국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재미 과학자 66%는 귀국하고 싶어 하지만 낮은 보수(55%)와 열악한 연구환경(52%)이 발목을 잡고 있다. 연구에만 매진할 수 없는 풍토, 연구비 관리에 대한 비현실적 규정과 감사, 연구 의욕을 꺾는 관료주의, 비정규직 연구원의 증가, 이공계 기피현상 등 부조리가 만연해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적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의 R&D 투자총액(2012년 16조원)은 세계 5위다. 하지만 연구실적을 나타내는 ‘연구원 1인당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논문 수 및 인용도 부문’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008년 이후 4년 연속 꼴찌(30위)다.

 과학기술은 한 나라를 먹여 살릴 미래 자원이다. 한국이 휴대전화·자동차·조선 등 산업에서 세계 수준에 오른 것은 응용기술이 그만큼 따라줬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아직 뒤처진 기초과학은 국력의 원천이며 그 수준은 선진국의 척도다. 따라서 현재의 과학기술 연구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혁해 과학입국을 시도하지 않으면 번영된 미래를 맞을 수 없다. 이를 위해선 과학에 대한 정부의 근본 인식부터 고쳐야 한다. 연구는 연구비와 시간·인력을 투입한다고 결과물이 척척 나오는 게 아니고 세심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과학의 가치는 물론 연구 과정과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최적화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혁신적인 과학연구 지원 전문공무원을 양성해 현장에 보내야 한다.

 과학자들이 가장 불만을 많이 표시하는 분야가 연구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과학자들의 연구 자율성을 확 높여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연구 풍토를 유도해야 한다. 복잡한 행정 절차는 전문공무원이 대신 처리하고 과학자는 연구에 전념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연구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

 이참에 과학기술계는 연구 인력의 국적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이민법을 개정해 외국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과학연구의 동력으로 삼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과거 미국 등 선진국이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인재를 장학금과 연구비를 내세워 흡수해 간 사례를 이제는 우리가 참고해야 할 때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과학자들이 고용불안 속에 일하는 문제도 과학입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중대한 문제다. 이젠 국가가 나서서 과학입국을 위한 획기적인 과학기술 정책을 마련할 때다. 한국의 미래 5년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대선 주자들도 함께 머리를 싸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