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해진 ‘파이널 퀸’ 신지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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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 신지애가 16일(현지시간) 영국 호이레이크의 로열 리버풀 골프클럽에서 열린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두 번째 샷을 날리고 있다. 하루에 3, 4라운드 36홀 승부를 펼친 신지애는 붉은 노을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과 시하며 여자골프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그는 “4년 전 인생의 전환점이 됐던 대회에서 다시 우승해 기쁘다”고 말했다. [호이레이크(영국) AP=연합뉴스]

“모든 것을 잠재운 승리였다.”(ESPN)

 “고통스러운 날씨를 이겨내고 지배자가 됐다.”(USA투데이)

 강렬하고 완벽한 컴백이다. 신지애(24·미래에셋)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2주 연속 우승과 함께 LPGA 통산 10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아일랜드 연안에서 불어오는 폭풍우를 뚫고 메이저 퀸으로 복귀했다. 언론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신지애는 17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호이레이크의 로열 리버풀 골프클럽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3, 4라운드를 잇따라 치르는 강행군 속에서도 끝까지 리드를 지켜냈다. 신지애는 3라운드에서 1타를 줄이고, 4라운드에서 1타를 잃었지만 합계 9언더파로 2위 박인비(24·이븐파)를 9타 차, 3위 폴라 크리머(26·미국·1오버파)를 10타 차로 꺾었다. 우승 상금은 41만8825달러(약 4억6800만원).

 이번 대회에서 합계 ‘언더파 스코어’를 적어낸 선수는 신지애가 유일했다. 2008년 이 대회에서 우승한 뒤 4년 만에 다시 정상에 선 신지애는 옛 모습 그대로 ‘파이널 퀸’의 위용을 자랑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신지애가 더 강력해졌다”고 평가했다. 1주일 전 미국 버지니아주 킹스밀에서 벌인 1박2일의 9차 연장전도, 이번 대회 하루 36홀 강행군도 그를 막아서지 못했다.

 바람도 신지애 편이었다. 경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던 신지애의 부드러운 스윙은 과거 호수였던 호이레이크의 바람까지 잠재웠다.

 하지만 ‘여제의 귀환’이 이뤄지기까지 신지애는 미즈노 클래식(2010년 11월) 이후 1년10개월 동안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패잔병의 시간을 보냈다. 우승이 없던 기간 주변으로부터 “이제 신지애도 한물갔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2009년 LPGA 루키 시즌에 3승을 하며 상금왕과 신인왕·다승왕을 독식했지만 2010년 이후 청야니(23·대만)와 최나연(25·SK텔레콤)의 빛에 가렸다. 시련의 시기에 신지애는 변화를 택했다.

 지난해 1월 신지애는 모든 것을 싹 바꿨다. 기존 스윙 코치 및 캐디와 결별하고 새 진용을 짰다. 하지만 거리를 늘리려고 했던 스윙 교정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여기에 그해 초 라식 수술을 했던 눈에 부작용이 생겼고, 허리 부상까지 겹쳐 한 달 정도 쉬어야 했다. 컨디션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끝 모를 슬럼프가 찾아왔다.

 결국 신지애는 올해 3월 스윙 코치가 없는 ‘나 홀로 골프’를 선언하는 결단을 내렸다. 지난 5월에는 왼쪽 손바닥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신지애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고통과 시련의 터널을 통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22개월 만에 킹스밀에서 우승한 뒤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았다. 이제 앞만 보고 질주하는 일만 남았다”고 웃었다.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는 강풍과 맞서 이겼다. 신지애는 더 강해진 ‘나 홀로 골프’로 여자골프 세계 정상에 다시 우뚝 섰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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