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네이버의 품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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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기자들은 논란이라지만 일반인은 아주 잘 즐기는 서비스입니다.”

 지난 14일 김상헌 대표를 비롯한 NHN 경영진은 이 말을 반복했다. 이 자리는 최근 포털사이트 네이버 메인 화면에 ‘안철수 룸살롱’과 ‘박근혜 콘돔’ 같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이하 실급검)가 올라와 사회적 논란을 빚자 운영사 NHN이 연 기자간담회였다. ‘실급검’은 단시간 내에 검색 순위가 급등한 검색어를 네이버 화면에 붙박이로 노출하는 서비스로, 명예훼손·조작·선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NHN은 “조작은 없다” “일반인이 사랑하는 서비스”라며 억울해 했다.

 하지만 ‘실급검’의 문제는 ‘조작 가능성’만이 아니다. 지난 4월 29일의 ‘압구정 가슴녀’ 사건을 보자. 이 선정적인 문구는 이날 아침 네이버 실급검 1위였다. 이를 보고 궁금해 한 네티즌들의 클릭이 쏟아졌지만 관련 사건이나 기사는 없었다. 알고 보니 한 인터넷 매체가 클릭을 유도하려고 단 낚시성 기사 제목이 출처였다.

 이 기사가 네이버 첫 화면 뉴스캐스트에 노출되자 여러 사람이 ‘압구정 가슴녀’를 검색했고, 실급검 순위에 포함되자 클릭이 클릭을 낳았으며, 검색 결과창에 나오려고 이 단어를 집어넣은 인터넷 기사는 50여 건, 블로그 글은 700여 개가 생산됐다. 이 사건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실급검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게 필요한 정보’보다 ‘남들이 소비하는 내용’을 클릭하게 만드는, 일종의 ‘사이버 관음증’이다.

 심지어 “화제가 된 ‘압구정 가슴녀’는 나였다”고 주장하는 신인 여자연예인도 나왔다. 네이버가 만들어 준 무주공산의 브랜드 가치(?)를 재빨리 차지한 셈이다. 이런 식의 상업적 콘텐트 난립은 네티즌의 피로감을 높인다. 그래도 일단 궁금하니 클릭 수는 늘어나고, 이는 네이버 방문자 수와 페이지뷰를 올려 광고단가에 적용된다. 실급검 서비스를 ‘아주 잘 즐기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네이버는 한국어 웹 콘텐트의 가장 큰 유통처다. 네이버가 쇼핑과 부동산정보까지 진출해 ‘공룡’ 소리를 듣고, 돈 받고 제품 후기를 쓰는 파워블로거의 상업성이 지탄을 받아도, 국민들이 한쪽으로 토종 검색 네이버의 선전을 바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네이버 검색의 선정성·상업성은 한국어 웹 콘텐트의 품격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포털은 ‘문’이라는 뜻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네이버라는 문을 통해 인터넷으로 들어간다. 지금 네이버가 누리는 지위는 여기서 나왔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이가 가치 있는 정보를 얻고 양질의 콘텐트가 유통되며 이를 만든 이는 합당한 보상을 얻는 곳, ‘한국인의 대문’은 이런 곳이어야 한다. 이것이 네이버가 돌아가야 할 초심이다.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