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엄마, 물에선 호랑이라 부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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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조순영

“저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Thanks for giving me great time).”

 10일(한국시간) 런던 패럴림픽 폐막식이 끝난 뒤 조순영(37) 수영 대표팀 감독과 기자에게 나이 지긋한 영국인이 감사 인사를 했다. 카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노신사의 이 한마디는 조 감독과 수영 대표팀이 한국 국민들에게 선사한 ‘특별한 시간’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표현이기도 했다.

 울면서 시작해 웃으며 마친 조 감독의 런던 패럴림픽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조 감독이 대표팀과 연을 맺은 것은 2010년이었다. 코치로 들어간 조 감독은 올해 감독이 되며 팀 전체를 총괄하게 됐다. ‘패럴림픽 초보 감독’인 셈이다.

 초보 감독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지난 1일 지적장애 선수인 이인국(17)의 ‘지각 실격’ 사태가 터졌다. 조 감독은 당시 “불안해 하는 인국이를 안정시킨 뒤 집합장소(경기 20분 전 도착)로 갔는데 심판이 1분 정도 늦었다고 말했다. 항의하자 심판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시계 시간과 달라서 안 된다고 했다. 정말 절망했고 많은 걸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이후 조원상(20)이 동메달을 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고 임우근(25)과 민병언(27)이 연달아 금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냈다. 대반전이었다. 대표팀이 이렇게 금방 회복할 수 있었던 중심에는 조 감독이 있었다. 선수들이 평소 밖에서 ‘엄마’라고 부를 만큼 친근한 조 감독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물론 조 감독은 수영장 안에서는 선수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 훈련을 시키는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이렇듯 안에서는 차갑고, 밖에서는 따뜻한 ‘엄마 감독’의 힘은 선수들의 기량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선수들은 먼저 스스럼없이 다가와 보듬어줬던 조 감독에게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선사했다. 조 감독은 “우리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늘 설레고 눈물이 자연스레 난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패럴림픽을 겪으며 수영을 넘어 장애인 스포츠의 전반적인 사안들도 곱씹게 됐다. 그는 “1년에 3~4개에 불과한 국내 대회와 장애인 체육을 지나치게 특별한 위치로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 실업팀 부족, 그리고 전문가(국제심판과 등급분류사) 양성 등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했다. 조 감독은 특히 “저를 봉사하고 희생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을 넘어 자부심을 가지고 선수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도자로 대해주길 바란다”는 대목에서 말에 힘을 줬다.

런던=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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