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구조적인 저성장 가능성에 대비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정부가 또다시 경기부양책을 꺼내 들었다. 지난 6월에 이어 두 번째로 경기를 살리기 위한 재정지원 강화대책을 내놓았다. 하반기에 8조5000억원의 재정자금을 투입하겠다던 1차 대책만으로는 가라앉기만 하는 경기를 되살리기 어렵다고 보고, 추가로 4조6000억원을 더 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재정지원대책으로 연내에 경기가 살아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경기가 더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많다.

 우선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부양책은 그 자체로 경기부양 효과가 의심스럽다. 재정지원이라는 것이 새로운 돈을 투입한다기보다 내년에 쓸 돈을 미리 당겨 쓰겠다는 것이어서 어차피 부양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근로소득세 원천징수를 덜해서 봉급생활자들의 소비를 부추기겠다는 것도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고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자동차와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내리는 조치는 해당 제품의 부분적인 판매확대 효과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소비 위축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이번 2차 부양책은 임기 말 정부가 본격적으로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지보다 더 이상 경기가 악화하지 않는 선에서 막아보겠다는 방어적인 성격이 강하다. 무엇보다 이번 대책에도 경기 회복의 관건인 기업들의 투자를 늘릴 대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그러한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임기 말을 맞은 정부의 입장에서 획기적이고 대대적인 경기대책을 내놓기 어렵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그럴 법도 하다.

 문제는 최근의 경기 침체가 단순히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경기순환의 한 국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올해 우리 경제는 정부가 당초 목표로 삼았던 3.3% 성장은 물 건너간 지 오래고, 이제는 성장률이 3%에도 못 미칠 것이란 전망이 기정사실이 됐다. 일부 예측기관에서는 하반기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마저 내놓고 있다. 7월 말 2.9%였던 10대 투자은행들의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평균 전망치는 한 달 만에 2.6%까지 떨어졌다. 이제는 내년에 3%대 성장을 장담하기도 어려워졌다. 이 같은 장기침체가 경기순환 과정이 아니라면 한국경제의 구조적 한계가 세계경제의 침체와 맞물리면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단순히 금리 인하나 재정지출 확대와 같은 대증적인 경기대책만으로는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기 부진이 대선정국과 겹치면서 경제상황을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경제체질의 개선과 같은 근본적인 대책은 강구하지 못하면서 대선 주자들이 내세우는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 요구에 경제정책이 휘둘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후보들은 장밋빛 공약을 내놓기에 앞서 한국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인 저성장의 가능성을 직시하기 바란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비전이 없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국경제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