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이번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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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문창극
대기자

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는데 대진표도 없다. 우리보다 한 달 먼저 선거를 치를 미국은 이미 전당대회를 열어 대통령후보를 확정했다. 봄에 후보가 사실상 확정되어 지난여름까지 후보들은 전국을 돌며 지지를 모아왔다. 우리 경우 야당은 후보를 뽑는다면서 그 후보가 임시후보라고 스스로 믿고 있으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고, 여당은 전당대회까지 해놓고도 경제민주화가 옳으니 그르니 아직도 싸우고 있다.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모든 눈은 안철수에게로 쏠려 있다. 그 한 사람의 마음먹기만을 기다리는 이 현실이 제대로 된 것일까. “목표가 대통령이 아니다” “아직 나이도 있으니까,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니….” 스스로도 이런 식이니 검증이고 정책이고는 다음 문제다. 그가 여러 사람들에게 출마 여부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하다. 만일 나에게 물어왔다면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나는 “그만두시는 게 좋을 것 같소”라고 말할 것이다. ‘아까운 사람이 왜 흙탕물에 몸을 담그려 하느냐’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사명감이 넘친다면 흙탕물인들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흔히 대통령은 하늘의 뜻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이는 인간의 이성적 계산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과 맞닿아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경우 세월이 흘러가다 우연히 환경이 맞아떨어지는 수가 있다. 또는 과거에 보았듯이 평생 그 자리를 향해 노력해 성취를 이룬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치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 자리에 나아가야만 하는 어떤 충만한 의무감이 흘러넘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열정이 없으면 안 된다. 결코 제3자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는 피하고 싶어도, 하늘의 뜻에 따라 세상을 향해 어쩔 수 없이 외치는 예언자의 운명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십자가는 어떤 고난이 닥쳐도 하늘 뜻에 복종하겠다는 자신의 결단으로 지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권유로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사람들이 떼밀어서 할 수 없이 생각 중이다”라는 태도로는 안 된다. 반면 그는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을 하고 있는 듯도 보인다. 지금까지 결정을 미루는 것 자체가 그 증거다. 그렇다면 겉과 속이 이중적이다.

 이런 미룸이 그의 본성이라면 더 큰 문제다. 권력은 사람의 성격과 경험을 반영한다. 그의 행동이 본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는 결단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중함이 지나쳐 사람들을 지치게 만든다.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서 이런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될까. 분초를 다툴 결심사항을 놓고 이런 리더십을 행사한다면 나라는 어디로 흘러갈까. 공적인 경험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의사와 컴퓨터 소프트웨어 경험만 있는 사람에게 거대하고 다양한 국정을 맡기기는 위태롭다. 회사를 운영한 경험을 말하지만 CEO 대통령의 한계를 우리는 똑똑히 경험했다. 공적인 사명감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생의 지향과 몸에 젖은 습관에 좌우된다. “나쁜 경험은 없는 것이 좋다”는 말은 오만이다. 비록 실패를 했더라도 경험한 자와 생판 경험이 없는 자와는 큰 차이가 난다.

 현실의 여건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가 경쟁에 뛰어든다면 꿈과 목표가 있을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것이 정당이다. 또 수십 명의 핵심 참모는 물론 수천 명의 인적 자원이 있어야 한다. 조그만 지방단체장을 하려 해도 자기 사람 수백 명이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정당은 고사하고 그의 주변 인물조차 거의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정권을 끌고 갈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남은 기간에 본인은 물론 주변 인물을 검증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혹시 그가 민주당과 손을 잡는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부인하는 행동이다. 그는 기존 정당을 불신했고 그것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현실을 이유로 당을 택한다고 한다면 지금 같은 여건에서 결국 그 당의 대리인밖에 안 될 것이다. 그가 내세우는 여러 이상들은 실현되기 어렵다.

 역사는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힘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나라는 그만큼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새 세상이 갑자기 올 것처럼 말하거나, 그것을 기대한다면 말을 하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 모두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의 기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주목을 받은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 미래의 세대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그를 통해 투사됐고 그로 인해 모든 후보들의 지향성에 변화를 주었다. 나는 그의 사명감이 더 영글기를 바란다. 공직의 경험도 더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더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모아 국민에게 보여주기 바란다. 그런 것이 충분히 숙성되면 열매는 맺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은 아니다.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