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원성진의 즉결처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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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2보(19~25)=구리 9단은 이세돌 9단과 쌍벽을 이룬 불세출의 고수다. 중국바둑은 구리 대에 와서 비로소 한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 이전의 중국 일인자들, 즉 녜웨이핑·마샤오춘·창하오 등은 조훈현·이창호에게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구리는 이세돌에게 결코 밀렸다고 볼 수 없다. 지금 중국은 마치 강물이 범람하듯 한국바둑을 넘어서고 있지만 그 시작은 구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구리는 포석에 특히 능하다. 돌 배치의 미세한 차이를 식별해 내는 감각이 탁월하다. 그가 흑▲에 백△로 응수하자 처음엔 이곳을 가볍게 처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구리는 20, 22로 즉각 움직였다. 이것도 정석의 하나임엔 분명하지만 흑▲처럼 적군이 가까울 때는 쓰기 힘든 수다.

 한데 구리는 왜 이 수단을 강행했을까. ‘참고도1’을 보자. 가볍게 둔다면 이처럼 백1 벌리는 것인데 흑2 두고 나면 결국 3, 5로 움직이게 된다. 하나 이 그림에서 백1과 흑2의 교환은 조금 이상한 측면이 있다. 그게 싫어 실전을 택한 것인데 원성진 9단은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23, 25로 즉결처분에 나섰다.

 약간 속수의 느낌이지만 막상 잡힌다면 크다. (이 수순을 피하려 ‘참고도2’ 백1을 선수하는 것은 대악수라 둘 수 없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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