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포기자들 "우리도 할 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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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국적법이 이중국적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

이른바'국적포기자','이중국적자'들이 인터넷상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근 병역 미필자의 국적 포기를 막는 개정 국적법이 통과되면서 법 시행 전에 국적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이들에 대한 거센 비난 여론이 일었다.'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국적까지 포기한다'는 비판에 이들은 그간 드러내놓고 반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판여론이 점점 커지고, 이에 힘입어 최근 각종 추가 입법 움직임도 일자 일부 국적포기자와 이중국적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도 모이고 있다. 이들은 국적포기자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감정적, 배타적으로 치닫고 있다며 인터넷상에 반박 논리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13일 포털사이트 다음에는 '국적이탈자'들의 카페도 등장했다. 현재 회원수는 30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카페의 회원들은 각종 입법조치의 가능성과 대처방법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비판여론에 맞서 "우리도 뭉치자"는 제안까지 내놓는 등 비교적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카페의 개설자는 '개정 국적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글을 통해 "소위 네티즌이라는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너무나도 감정적인 글들로 국적 이탈자들을 호도하고 있다"며 여론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들은 주장은 모든 국적 이탈자들이 병역기피가 목적인 것은 아니며, 현행법이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아 어차피 하나의 국적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비난만 받고 있다는 것.

카페 개설자는"원칙적으로 병역 회피 목적의 국적 이탈을 막자는 국적법 개정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개정법은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즉 개정 국적법이 병역회피 목적이 아닌 이른바 '순수한 국적이탈'도 막고 있으며, 외국 국민이 되려는 사람에게 한국의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병역회피를 막기 위해선 당초 국적법이 아니라 국적이탈자에게 각종 혜택을 주고 있는 재외동포법을 개정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이 카페의 회원들도 여론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한 회원은 "편견으로부터 아이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며 "우리도 뭉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회원은"(이중국적자인) 꼬마는 이제 6살인데 참 당혹스럽다"며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지고, 몰아세우고 난리니 떠나고 싶다는 없던 생각도 생긴다"고 말했다. "아이와 가족 전체가 심적인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한 회원도 있다.

각종 토론방이나 댓글에도 여전히 국적 포기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주류지만 점차 다른 목소리들도 흘러 나오고 있다. 특히 국적이탈이나 병역회피를 막기 위해서는 교육환경 개선, 군경력 보상, 군대내 인권보호 수준 강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포털사이트에 게시된'홍준표 의원님께 드리는 글'의 경우 조회수가 3만여건을 넘어섰다. 군필자이며 미국 유학 중 자녀를 뒀다는 글의 작성자는 "국적 포기자에 대해 불이익을 주기에 앞서, 군필자들이 사회생활에서 겪는 불이익에 대한 보상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경력자들이 미필자들에 비해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 겪는 상대적 불이익이 병역을 기피하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 그는 현재 자신도 군미필자인 연하의 상사 밑에서 일하고 있다며 "'우리 아들은 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학원 영어강사라는 한 네티즌도 "요즘 학부모들 한숨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교육이 갈 길을 못찾고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며 국적포기자 속출의 근본 원인이 교육문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14일 SBS'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일부 해외공관의 부실한 재외국민 관리 문제를 제기하자 시청자 게시판, 외교부 홈페이지 등에는 "국적포기하는 사람들 이해가 간다"는 네티즌들의 글이 빗발치기도 했다.

한편 '원정출산'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여전히 방문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출국 날자가 닥쳐오는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는 문의가 많다. 여기에 한 네티즌이 달아놓은 답변은 개정 국적법하에서도 원정출산 현상 등이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이중국적자 국민처우 신고하고, 18세까지 이중국적으로 살다가 아이를 미국에서 살게 하려면 군대 보내지 말고, 한국에 살게 하려면 군대 보내면 됩니다. 전과 달라진 것은 군대에 가야 한국에 살 수 있다는 것뿐. 걱정 뚝."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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