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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부모 자격을 심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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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선희
논설위원

“이제 우리도 아동을 방치하는 부모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물을 때가 됐다.”

 이는 지난 통영 아름양 살인사건 범인 검거 직후에 긴급 소집됐던 대검 성폭력대책협의회에서 민간인 위원이 제기한 안건이었다. 당시 피해자였던 아름양이 ‘나홀로 어린이’였고, 아동 대상 범죄 상당수가 부모의 방임 상태에서 일어난다는 점 때문이었다. 참고할 외국 제도도 많고, 우리도 부모의 보호 책임을 강화할 단계가 됐다는 데 모두 공감했다. 하지만 생계활동을 포기하고 아이만 볼 수 없는 현실, 이런 경계선상의 아이들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의 부실 등 여러 현실적 문제가 발목을 잡아 결론 없이 이날 회의는 끝났다.

 그리고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또 아이들이 방치된 상태에서 범죄가 일어난 것이다. 범인은 문도 잠그지 않고 거실에서 아이들끼리 잠든 사이 유유히 들어가 일곱 살짜리 여아를 이불째 납치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안방에서 잠자고, 엄마는 PC방에 있었다. 물론 부모들이 어찌 상상이나 했겠나. 그동안 문 열고 잠을 잤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부모는 아이들의 안전한 잠자리를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쳐 준 이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최소한 자녀 보호에 소홀한 부모는 처벌받을 수 있다고 공론화만 했어도 부모가 좀 더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최근 엽기적인 성범죄와 묻지마 범죄가 정신없이 일어난다. 이에 치안당국엔 안전감시망을 더 촘촘히 짜라고, 사법당국엔 더 강력하게 처벌하라고, 정부엔 아동포르노가 판치는 인터넷 단속을 더 철저히 하라고 도처에서 시끄럽게 주문한다. 그런데 당국은 일의 뒤처리나 할 뿐 원천을 봉쇄하지 못한다.

 이런 범죄의 근원지는 가정이며, 1차적 책임자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나주 사건 범인 고종석은 어려서부터 도둑질을 일삼던 방치된 문제아였고, 그동안 각종 성범죄와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 중엔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시달린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가 하면 가정의 보호에서 벗어난 가출 청소년(14~19세)은 지난해 2만434명으로 2007년(1만2237명)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해마다 늘고 있다. 이들은 각종 생계형 범죄와 성매매 등 범죄에 가담하거나 잠재적 범죄에 노출돼 있다.

 또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아동포르노 생산국 중 6위를 기록했는데, 청소년들이 직접 셀카로 찍어 유통시키는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포르노는 외국에선 소지한 것만으로도 중죄이고 제작은 훨씬 중하게 취급된다. 그런데 우리 청소년들은 이를 장난 삼아 제작하고 유포하면서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 부모의 제대로 된 교육과 보호를 받았다면 이들이 이렇게 됐을까?

 어쩌면 많은 부모가 부모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자식을 ‘병리사회의 괴물’로 길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가 아이를 방임하거나 학대하는 등 보호하지 않으면 자녀가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도 부족하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부모의 보호책임에 대해 무방비 상태라 해야 할 만큼 관대하다. 부모의 자녀 보호책임에 대해선 ‘아동복지법’에 규정하고는 있지만, 방임에 대해서는 금지조항도 없고 유기와 학대 정도만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 등 약한 처벌규정이 있다. 최근 숙명여대의 한 박사논문에 따르면 아동학대 의무신고자인 교사 10명 중 8명이 아동학대를 의심해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가정 범죄에 무감각하다.

 이젠 우리 사회도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부모지침서’를 만들어 가르치고, 그들이 제대로 하는지 감독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해야 할 때가 됐다. 또 방임·학대 등 양육환경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부모의 친권을 박탈하는 미국식 제도의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부모 노릇 못하면 부모 자격을 박탈해서라도 아이들이 ‘병리사회의 괴물’로 자라는 것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