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조작 시비, 포털 검색어 순위 “대선 앞두고 정비해야” 한목소리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지난달 31일 밤 트위터에 “네이버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네. 다음에는 황우여 결혼 권장이 인기 검색어인데…(@pilsucom)”란 글이 올라왔다. 잠시 후 달린 답글은 이랬다. “환관 황우여로 검색어 1등 만들어 볼까여?ㅎㅎ(@randaring)”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성범죄 대책을 얘기하던 중 ‘가정과 결혼을 보호하고 권장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의 비난이 쏟아지던 중이었다.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가 검색어 순위를 정치적 입장에 따라 조작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과 필요하다면 뜻 맞는 네티즌끼리 순위를 조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대로 투영된 사례다.

국내 포털이 운영하는 검색어 순위 서비스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양대 포털 네이버와 다음이 2005년 차례로 검색어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조작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네이버의 검색어 조작 의혹이 다시 불거진 것은 지난달 21일. 엉뚱한 단어 조합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다. 박근혜·안철수의 이름과 룸살롱·콘돔 등 낯뜨거운 단어들이 실시간 검색어란을 뒤덮었다. “네이버가 유력 야권 대선 주자를 깎아내리려 한다”는 음모론과 맞물려 파장이 커지자 결국 NHN 김상헌 대표가 나서서 해명하기도 했다. 8월 초에는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과 돈 공천 연관 검색어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포털 측은 아직 시원하게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치적 사례 외에 실시간 검색어는 돈을 목적으로 한 조작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2009년 말 네이버의 ‘연관 검색어’와 ‘검색 순위’를 조작한 혐의로 프로그래머와 쇼핑몰 대표, 기획사 대표 등을 기소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포털에서 ‘여론 조작’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에서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등 문제의 소지가 있는 서비스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정 정파나 인물에게 유리 또는 불리하게 검색어 조작이 가능한 만큼 제도의 정비 내지 제한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조작 시비가 일고 있는 핵심 원인은 ‘실시간 검색어’ 선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포털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어떤 방식으로 산정하는지 공개한 적이 없다.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포털의 이런 태도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김인성(IT 칼럼니스트) 한양대 겸임교수는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검색어가 갑자기 사라지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순위 변동 사례가 끊이지 않아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도 “획기적 개선이 없다면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룸살롱’ ‘박근혜 콘돔’보다 더 큰 사고가 터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실시간 검색어 서비스를 폐지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나온다. 민주통합당 전병헌 의원실 관계자는 “네이버의 검색 점유율이 70%를 넘어서는 등 경쟁체제가 와해된 상황에서 실시간 검색어 같은 서비스에 의한 여론 쏠림 현상이 심하다”고 말했다. 올 초 검색 서비스의 중립성·투명성 문제를 지적했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도 “정확한 운영 방침과 기준을 공개하든지, 그게 안 된다면 서비스를 없애는 게 맞다”고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네이버 원윤식 홍보부장은 “조작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조만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서비스의 상세한 운영방침과 원칙을 공개하고 외부 검증도 받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시스템 구조상 의심할 소지는 있지만 고의적·상시적 조작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네이버에 별 의미도 없을 것”이라고 거드는 분위기다.

하지만 검색 서비스의 운영 방침에 대해 엄격한 점검과 감시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다. 임종수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특정 세력이 인위적으로 여론의 향방을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그대로 놔둔다면 이는 범죄와 다를 게 없다”고 했고, 최진순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겸임교수는 “기업 마케팅 담당자 등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려는 유혹이 큰 현실에서 포털들이 센세이셔널한 서비스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승녕,기선민 기자 francis@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