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인과 떠나는 사찰 기행① 문태준 시인의 김천 황악산 직지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오늘부터 week&은 매달 마지막 주 ‘시인과 떠나는 사찰기행’ 시리즈를 연재한다. 장석남·문태준 두 시인이 한 달에 한 번씩 사찰 여행기를 번갈아 쓴다. 그 첫째 순서로 문태준 시인이 경북 김천 황악산의 직지사를 다녀왔다.

직지사 템플스테이는 기율이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주말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삼보일배를 마친 뒤 참선을 하고 있다.

큰비가 지나간 후라 갑갑하던 대기가 후련해졌다. 직지사에 들어서자 귀에 먼저 들이친 것은 물소리였다. 직지사 바로 옆으로 계류가 흐르고 있거니와 대(代)가 끊어지지 않고 흘러내리는 이 물소리는 직지사 경내로도 작은 물길을 이루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물은 풀리거나 느슨한 몸을 지녔다. 뼈가 없고, 물렁물렁하고, 유순하다. 또한 물은 상향(上向)에 반대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한 까닭도 이 때문일 것이다. 물이 혼탁하고 악한 세속의 나를 씻기며 흘러간다. 수류화개(水流花開)라 했으니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가까이에 배롱나무의 붉은 꽃도 활짝 피었다.

산문(山門)을 들어서는데 마음가짐을 당부한 글귀가 보였다.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분별심을 쉬게 하고 약삭빠른 수단과 판단을 뒤로 물리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때 묻은 마음을, 불타는 마음을, 넝쿨 같은 마음을 내려놓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1988년 1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나는 직지사를 찾은 적이 있었다. 몸의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 때문이었다. 봉산면 태화리의 나의 고향집과 직지사와는 거리가 더할 수 없이 가까웠다. 직지사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 소풍을 갔던 곳이기도 했다. 직지사 주최의 사생대회, 글짓기 대회에 참여했던 적도 있었다. 여러모로 직지사와 나와는 오래 묵은 인연이 있었다. 직지사 템플스테이 사무국을 찾아갔다. 직지사 템플스테이는 규율이 엄하기로 유명하다. 포교국장 민성 스님이 직지사 템플스테이를 소개했다.

“불교의 습의(習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해요. 잘못하면 참회시키고, 절을 많이 하게 하고, 묵언을 시키지요. 여긴 해병대 캠프보다 더 세요. 해병대 캠프는 근육을 쓰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지만 자유가 있잖아요. 여긴 없어요. 중도에 돌아가고 싶어도 못 가요.”

묵언이라. 묵언은 말을 버리고 잠잠함을 얻는 것이다. 말을 버리고 마음의 근원(心原)을 보는 것이다. 무성처(無聲處)에 기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말을 버림은 위대한 포기다. 나도 사찰 수련회에 여러 번 참가한 적이 있었지만 묵언은 참으로 무겁고 무섭다. 불교의 십악(十惡) 가운데는 말과 관련된 악행이 많다. 이간질 하는 말(兩舌), 남을 성내게 하는 나쁜 말(惡口), 겉만 좋고 실속이 없는 말(綺語), 망녕된 말(妄語)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혀는 제 몸을 패는 도끼와 같은 것이니 단속하라는 뜻이다.

세간 살림이 없는 방사(坊舍), 발우공양, 새벽예불, 108배, 좌선과 포행, 울력, 삼보일배 등으로 꾸려지는 직지사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참가자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지사 템플스테이에는 각별한 것이 있었다. 새벽에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함께 읽는다.

『부모은중경』은 태에 잉태하고, 열 달을 다 채워 몸에 품고, 출산하고, 쓴 것을 스스로 삼키되 잘 먹일 것을 늘 생각하고, 마른 자리를 찾아 눕히고, 젖 먹여 기르고, 먼 길 떠나는 자식을 바라보며 애가 끓어 울고, 여든 살의 자식조차 쉼 없이 걱정하는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막중한지를 설한 경전이다. 많은 참가자들이 이 경전을 읽으며 미명의 새벽에 눈물을 삼켰으리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직지사 템플스테이의 매력은 자기 소견을 내지 않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데에 있었다. 자신을 텅 빈 허공처럼,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고요한 그릇처럼 바라보는 것에 있었다. 고요를 회복시키고 혼침(昏沈)을 다스리고 정신을 성성하게 하는 데에 있었다. 그리하여 참가자들은 자신의 형편이 부족하다는 푸념을 그치고 오유지족(吾唯知足), 즉 오직 족함을 아는 심경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민성 스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참가자가 스님께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스님은 그가 전투비행단 소속 파일럿이라고 귀띔해주셨다. 전투비행단 소속 조종사들이 템플스테이를 와서 오늘 이른 아침에는 만세루(萬歲樓)에 정좌를 하고 앉아 불교의 네 가지 법구인 법고, 운판, 목어, 대종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나는 잠시 의아했다. 쾌속으로 활강하는 조종사들이 사물의 느린 소리와 울림을 감관(監觀)으로만 측량하다니. 조종사들은 황악산 등반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스님은 그들이 오른 황악산은 몇 해 전 연습비행을 하던 전투기가 추락했던 곳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스님의 말씀에는 습기가 있었고, 무겁게 내 가슴 한복판에서 맴돌며 울렸다.

대웅전에서는 사부대중이 『아미타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대웅전 뒤에는 정종의 어태를 묻었던 태봉(胎峯)이 부드러운 능선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람한 감나무에는 탱탱하고 푸른 감이 열렸다. 조선시대에는 직지사에서 수확된 감들이 진상되기도 했다. 나는 직지사의 산내 암자를 찾아 한적한 숲길을 걸어 올라갔다.

“멀리 보면 산빛이 있고, 가까이 들으면 물소리 없네. 봄은 가고 꽃은 남았는데, 사람이 와도 새들은 놀라지 않네. 두두(頭頭)가 모두 드러났으니, 물물(物物)의 체(體)가 본래 평등하네. 어찌하여 모른다 말하리, 너무나 분명한 이 모습이여”라고 적힌 명적암(明寂庵) 육화료(六和寮)의 주련 아래 한참을 앉아 있었다.

1 명적암을 오르고 있는 문태준 시인. 2 새벽 예불을 올리고 있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 3 늦은 밤 참선중인 어린 나이의 템플스테이 참가자(오른쪽 두번째)가 하품을 하고 있다.

더 올라가 중암(中庵)에 들렀다. 중암은 관응 스님께서 주석하셨던 곳이다. 관응 스님은 운허 스님, 탄허 스님과 함께 불교계의 삼보(三寶)로 불릴 정도로 교학에 밝으셨던 분이셨다. 법정 스님께서 길상사 개원 법회에 법사로 모실 정도로 법정 스님은 관응 스님을 매우 존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응 스님은 연만하여서는 은자로 사셨다. 관응 스님을 오랜 세월 곁에서 시봉했다는 도진 스님이 단호박 감주를 내주시며 말씀하셨다.

“노스님은 세상에 대한 욕심이 없었지요. 외출을 접었어요. 바깥을 끊고 수행하다 죽겠다고 하셨지요. 정지견(正知見)을 가지고 수행을 하라고 하셨어요. 바른 지견이 열리지 않으면 나와 세상을 바로 볼 수 없다고.”

여실지견(如實知見), 있는 그대로를 올바르고 명료하게 알아야 한다고 늘 이르셨다는 것이다. 도진 스님은 관응 스님께서 금생에서 수행정진하셨던 수미산방(須彌山房)으로 나를 안내했다. 길은 풀과 풀벌레 소리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수미산방의 주련을 읽으셨다.

“종일토록 깨어 있는 생각으로 참선에 들어가면 하늘과 땅이 한눈에 들어오네. 벗이 있어 초옥을 찾아오니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네. 종일토록 시름 놓고 참선을 하니 모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네. 내 생에 무엇이 남겠는가. 수행하는 방 벽에 물 떠먹는 표주박이 하나 걸려 있을 뿐이네.”

나는 수미산방 아래로 길게 누운 겹겹의 능선을 바라보았다. 나는 물소리를 옆구리에 두르며 내려가 다시 저 아래 세속(世俗)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은 젖음으로 본체를 삼으니 본체(젖음)에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요, 파도는 움직임으로써 형상을 삼나니 바람으로 인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의 성품과 파도의 성품이 하나는 움직이고 하나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물결 밖에 물이 없고 물 밖에 따로 물결이 없어 그 젖는 성품은 하나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이상으로 생각해보면 본체와 작용이 하나인지 다른지를 가히 알 수 있다.”

서산대사의 저서인 『선문촬요(禪門撮要)』의 말씀을 생각하니 내가 돌아갈 길이, 돌아가 해야 할 마음공부가 멀고도 많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물소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글=문태준 (시인)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문태준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뒤 미당문학상·동서문학상·소월시문학상 등 시 부문 주요 문학상을 받았다. 불교방송 PD로 일하며 서정적이며 불교적인 시를 생산하고 있다.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그
늘의 발달』『먼 곳』, 산문집 『느림보 마음』등 출간.

김천 황악산 직지사는

사명당 출가한 1600년 역사 고찰 … 템플스테이 1호

직지사는 1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이다. 신라 눌지왕 2년(418년)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신라 최초의 사찰 도리사(417년 건립)에 이어 한강 이남에선 두 번째로 들어선 사찰이다. 현재 직지사는 조계종 제8교구 본사로, 도리사를 말사로 두고 있다.

직지사는 템플스테이 1호 사찰로도 유명하다. 조계종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국내 사찰 33개를 개방했는데, 그 대표 프로그램이 직지사에서 진행됐다.

비로전 천불상. 천불상 중에서 벌거벗은 동자승이 있다.

여느 이름난 사찰처럼 직지사도 천하의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남한 쪽 백두대간 중간께 위치한 황악산(해발 1111m) 자락 깊숙한 곳에 들어앉아 있다. 직지사 뒤편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명적암·중암·운수암·백련암·은선암 등 암자 5개가 차례로 나오는데, 중암에서 내려다보면 양 옆으로 황악산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이 발 아래 직지사를 품고 있는 게 보인다. 직시사 아래로 김천시내가, 김천시내 뒤편으로 금오산이 내다보인다.

직지사 템플스테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느림과 비움 그리고 나눔’이라는 이름의 수행형 프로그램은 매월 둘째·넷째 주말에 1박2일로 진행된다. 성인 5만원. ‘고요한 산사생활’이라는 이름의 휴식형 프로그램은 수시로 진행되는데 1박 3만원이다. 직지사 수행형 프로그램은 특히 기율이 엄격하고 일정이 빡빡한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오후 3시부터 이튿날 11시까지 일정이 꽉 차 있는데 새벽 예불, 108배, 암자 순례는 기본이고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삼보일배를 한다. 휴대전화를 비롯한 모든 소지품을 맡겨야 하고, 묵언이 기본이며, 마음대로 화장실도 갈 수 없다. 직지사 포교국장 민성 스님은 “집의 소중함, 일상의 소중함을 배우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직지사는 사명당이 출가한 사찰이다. 사천왕문 앞에 출가하기 전 소년 사명당이 밤을 지새웠다는 장소가 있다. 명부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영정이 있고, 비로전 천불상 가운데 발가벗은 동자승이 서 있는데 한눈에 알아보면 아들을 낳는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054-429-1716. jikjisa.or.kr.

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