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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타임지 표지 장식할 한국의 저커버그, 이 안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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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영등포동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창업콘서트. 벤처인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 호창성·문지원 비키 대표, 김길연 엔써즈 대표, 류중희 올라웍스 창업자가 연사로 나선 이날 강연은 토요일 저녁 시간에 개최됐음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안성식 기자]
2010년 올해의 인물 저커버그

지난해 캠퍼스스타일아이콘을 설립한 남원준(25) 대표는 경영학 전공자다. 캠퍼스스타일아이콘은 각 대학 멋쟁이들의 스타일을 분석하고 소개하는 온라인 패션잡지다. 창업을 준비하면서 남 대표는 따로 학원에 등록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웹사이트 구축은 전문회사에 맡길 생각이었지만 기술을 알아야 일이 제대로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창업한 뒤에도 그는 개발자들 어깨너머로 꾸준히 프로그래밍을 배워 지금은 웬만한 건 직접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

 한국의 저커버그 10명 중 절반(4.8명)가량이 남 대표처럼 비(非)공학 전공자였다. 본지가 고벤처포럼으로부터 창업가 103명을 추천받아 설문조사를 벌여 분석한 결과다. 인문·사회과학 전공자가 20.4%로 가장 많았고, 경영(14.6%)·예체능(6.8%)·순수과학(4.9%)·법학(1%) 순이다. 창업가 대부분이 웹이나 모바일 기반 서비스로 창업하지만 정작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18.4%뿐이었다. 박길성(50·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디지털 기술을 모국어처럼 접하고 자란 세대인 만큼 컴퓨터나 기타 공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거부감 없이 관련 창업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특징은 20대에서 더 뚜렷했다. 30대의 경우 이공계열(30명) 전공자가 문과계열(15명) 전공자의 두 배에 달했지만, 20대에선 각각 22명, 21명으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컴퓨터 관련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해도 창업가들은 “IT 기기와 관련 기술에 익숙하다”고 대답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오로라플래닛 김진원(31) 대표는 “웹디자인에서 볼 수 있듯 IT가 이미 미술 분야 깊숙이 들어와 있는 만큼 미술을 전공했다 해도 디지털 기술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최근 화두가 되는 사용자환경(UI)이나 사용자경험(UX) 측면에서 보면 더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창업한 것 역시 보다 편리한 UI와 UX를 만들기 위해서다. 오로라플래닛은 현재 북일러스트레이터와 출판사를 연계해 주는 온라인 서비스를 개발 중인데, 김 대표는 서비스의 UI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닷컴 벤처를 이끈 전 세대 창업가 대부분이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해진(45) NHN 의장, 이재웅(44) 다음 창업자, 김정주(44) 넥슨 대표는 모두 컴퓨터공학이나 전산학을 전공했다. 김택진(45·전자공학)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범수(46·산업공학) 카카오톡 의장도 공대 출신이다. 전 세대가 컴퓨터로 대표되는 IT 기술을 학문으로 배워 창업에 도전했다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생활로 익혀 창업에 나서는 것이다.

 실제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한국의 IT 발전 에 맞춰 성장했다. 국내 최초로 인터넷 연결이 시도됐던 1982년 전후 태어나 초고속인터넷망이 상용화된 1994년 이후 10대를 보냈다. 그 무렵부터 PC 가격이 떨어지면서 1990년 후반엔 1가구 1PC 시대가 열렸다.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박희은(26) 이음 대표는 “초등학생 시절 PC통신에서 초등학생 커뮤니티의 시숍을 맡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가지고 놀았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창업 아이템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전 세대 창업가들이 검색 기술이나 고사양의 그래픽 처리 능력이 필요한 게임 같은 기술 기반의 회사를 차렸다면, 이들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기업을 차린다. 미대 출신인 전해나(25) 애드투페이퍼 대표는 교양 수업 시간에 다른 팀에서 발표한 아이디어에 반해 개발자를 합류시켜 회사를 차린 경우다. 애드투페이퍼는 대학교 공용 컴퓨터실 출력용지 하단에 기업 광고를 넣는 대신 학생들에겐 무료 인쇄물 출력 서비스를 제공한다. 출력용지에 광고를 넣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 뒤 이를 기반으로 광고주를 모으고 서비스를 할 대상 학교를 연결해 주는 게 애드투페이퍼 사업의 핵심이다. 전 대표는 “고급 기술은 유능한 개발자를 뽑아 맡기면 된다. 중요한 건 돈이 될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현재 27개 대학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애드투페이퍼는 연내 대상 학교를 1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국내 4년제 대학(200여 개)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전공뿐 아니라 출신 대학도 다양해졌다. 닷컴 벤처 붐을 이끌던 창업자의 경우 KAIST나 포스텍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디지털 네이티브 창업가 중 이들 학교의 비중은 7.8%에 그쳤다. 대신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출신이 40% 가까이 됐고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출신도 26%나 차지했다. 외국대(12.6%)와 지방대(7.8%) 출신도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박길성 교수는 “과거 창업이 컴퓨터에 미친 특별한 소수의 영역이었다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겐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출신 대학과 전공을 불문하고 이들이 창업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윈트리뮤직 노종찬(27) 대표는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진 만큼 창업이라는 리스크(위험)를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만큼 창업을 통하지 않고는 부를 축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 성공한 벤처인들이 투자자이자 멘토로 나서면서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니시스를 창업한 권도균(49) 대표는 초기 벤처에 소액투자를 하며 인큐베이팅까지 지원하는 프리이머를 운영 중이고, 네오위즈 창업자 장병규(39) 대표 역시 본엔젤스를 운영하며 투자자로 활약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을 비롯한 정부 자금과 벤처투자사의 투자가 늘어난 것도 디지털 네이티브의 창업 열풍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정선언 기자·조홍석 인턴기자(연세대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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