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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빚 줄이려 발급 규제해도 카드사들 마구잡이 영업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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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 주부 한모(43)씨는 요즘 현대카드 콜센터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 달 전 유효기간이 다 된 신용카드가 재발급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느닷없이 배달되면서다. 그가 “불필요한 카드를 정리하려 한다”며 수령을 거절하자 수시로 전화가 걸려왔다. “카드를 말소하려면 주민등록번호 등이 필요하니 얘기해 달라”는 것이다. 한씨는 “자기들 마음대로 카드를 만들어 보내 놓고 이제 와 개인정보까지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고 말했다.

 #2. 급전이 필요해 카드론으로 100만원을 대출받았던 박모(41)씨는 최근 하나SK카드로부터 “추가로 카드론을 받으라”는 전화를 받았다. 카드론 금리는 20% 중반대. 박씨는 “돈을 급하게 쓸 일도 없고 금리가 너무 비싸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직원은 “조금 있으면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 대책 때문에 카드론을 받기도 힘들어진다. 지금 대출을 신청하면 이자를 25% 깎아 주겠다”며 그를 유혹했다.

 신용카드사의 마구잡이 영업이 여전하다. 금융 당국이 가계 빚 증가를 막겠다며 카드 발급 규제를 강화하고 전화 마케팅을 제한하고 있지만 소용없다. 막무가내식 회원 유치, 고금리 카드 빚 권유가 판을 친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6월 말까지 국내에 발급된 신용카드는 수는 1억1638만 장. 2002년 카드대란 당시(1억480만 장)보다 약 1600만 장 많다. 카드사들이 2006년 이후 경쟁적으로 신규 회원 유치에 나선 탓이다. 길거리 회원 모집이 지난해부터 단속 대상이 되자 요즘은 대신 전화 마케팅이 기승을 부린다. 포인트나 사은품을 내걸고 카드 발급을 권유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직장인 임모(32)씨는 최근 롯데카드로부터 “지금 쓰고 있는 체크카드 말고 신용카드를 새로 내면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1만 점 제공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 카드의 연회비는 5000원. 규정에 따르면 카드사는 연회비의 10%가 넘는 사은품을 제공할 수 없다.

 고금리 대출 마케팅도 여전하다. 특히 금융 당국이 제 1, 2금융권의 가계대출을 조이면서 카드론 전화 마케팅이 더욱 강화됐다는 게 업계 분위기다. 돈은 급한데 대출이 막힌 서민들이 대상이다.

 경영환경이 나빠지자 마케팅을 늘리고 그게 다시 경영실적을 떨어뜨리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올 1분기 전업카드사(KB국민카드 제외)는 당기순이익이 1256억원(삼성카드 에버랜드 주식매매이익 제외) 감소했다. 그런데도 마케팅 등 카드 영업비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늘어난 2235억원을 썼다. 한 신용카드사 관계자는 “9월부터 중소가맹점 수수료를 내린 만큼 수익이 줄어들 게 뻔한데 마케팅에 손을 놓을 수 있느냐”며 “다음 달부터 7등급 이하 저신용자 카드 발급이 제한될 조짐이어서 더더욱 전화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부실 우려다. 금감원이 밝힌 3월 말 신용카드 연체율은 2.09%.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2%를 넘어섰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신용카드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는 저소득층이 늘고 있다”며 “이런 시기엔 무리하게 외형을 키우기보다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부실 고객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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