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느는데 당국은 대출 독려 … 금융권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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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정동 한 신협의 대출 담당자 박모 팀장은 매일 햇살론 독촉 전화를 10건 넘게 건다. 이 신협이 2010년 이후 내준 햇살론은 1000건이 넘는다. 대출자 중 제 날짜에 꼬박꼬박 원리금을 갚는 이는 열에 둘 정도다. “반 이상은 연락을 하지 않으면 며칠이고, 몇 주고 연체를 하시는 분들입니다. 입금한다고 해놓고 연락이 두절되는 분들도 한둘이 아닙니다.” 박 팀장은 “연체율이 10%가 안 되는 것은 한 달 이상 연체한 이들만 계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2금융권이 햇살론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치솟는 연체율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데다 ‘손이 많이 가는 대출’로도 악명이 높다. 금융당국의 독려에도 햇살론 대출 실적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다.

 농협중앙회의 올 6월 햇살론 대출 실적은 54억6000만원. 지난해 같은 달(73억9300만원)보다 26.1% 줄었다. 신협중앙회 역시 같은 기간 113억2900만원에서 88억9400만원으로 21.5% 감소했다.

 창구에선 햇살론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하소연이 줄을 잇는다. 햇살론 대출자가 한 달에 갚아야 하는 원리금은 보통 30만원 미만이다. 하지만 독촉 없이 꼬박꼬박 상환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 단기 연체율이 높은 소액대출이다 보니 품이 많이 든다. 농협의 한 지점 관계자는 “살기 팍팍한 대출자가 많다 보니 돈 갚으라는 전화도 잘 받지 않거나 욕설을 하며 응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며 “받아야 하는 돈에 비해 직원들 업무량과 스트레스는 너무 많다”고 말했다.

 출시 2년 만에 연체율이 5%를 넘어서면서 손실 걱정도 쌓이고 있다. 이달 6일 금융위원회는 햇살론 보증비율을 기존 85%에서 95%로 10%포인트 늘렸다. 기존 대출은 사고가 나면 15%를 금융회사에서 메워야 한다는 얘기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지금도 햇살론은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품인데, 연체율이 지금처럼 높아지면 적자가 계속 쌓일 것”이라며 “금융권이 100% 보증을 요구해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계 대출은 조이면서 서민 금융은 늘리라는 당국에 대한 불만도 팽배해 있다. 제2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햇살론 외에 다른 대출에서 이익을 내면 햇살론에서 손해가 나더라도 이를 상쇄할 수 있을 텐데, 다른 대출은 줄이라면서 서민 금융만 늘리라니 미칠 노릇”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햇살론 독려 입장은 변함이 없다. 이형주 금융위원회 서민금융과장은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금융회사 부담이 커진다는 점을 감안해 최근 보증비율을 상향 조정했다”며 “어려움이 있겠지만 금융 소외자를 위한다는 사명감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햇살론=2010년 7월 선보인 서민 전용 대출상품. 미소금융·새희망홀씨와 함께 3대 서민대출로 불린다. 신용등급이 낮고 소득이 적어 은행 돈을 빌리기 어려운 서민에게 비교적 낮은 금리로 대출해 준다. 출시 당시 금리는 연 10~13%. 연 20~30%대인 카드론의 절반 수준이다. 연소득 4000만원 미만의 저신용자나 점포가 없는 자영업자, 일용직·임시직 근로자 등이 대상이다.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주지만 돈 떼일 염려는 크지 않다. 신용보증재단이 보증을 서고, 이 보증을 담보로 대출해 주기 때문이다. 이달 초 정부는 85%였던 햇살론 보증비율을 95%로 높이고 금리도 연 8~11%로 낮췄다. 농협·신협·저축은행 등 제2금융회사에서 취급하며 생계자금은 최고 1000만원, 사업운영자금은 2000만원, 창업자금은 5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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