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살님, 배낭에 초코파이 넣고 길 떠난 까닭은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꼬박 6년째 전국의 유서 깊은 사찰을 찾아 부처님 자비를 나누는 108산사 순례 기도회. 9일 전남 강진 무위사를 찾았다. 기도회를 이끄는 선묵 혜자 스님이 신도들에게 법문을 들려주고 있다. [강진=프리랜서 오종찬]

8월 염천(炎天)도 이들을 막을 순 없다. 순례단을 이끄는 서울 도선사 주지 선묵 혜자(60) 스님의 말 한마디면 날씨에 상관 없이 보살(여신도)들은 길을 떠난다. 평균 참석자 5000∼6000명. 2006년 가을부터 매달 한차례, 전국의 유서 깊은 사찰을 차례로 훑으며 불교 포교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108산사 순례 기도회(이하 기도회)’ 얘기다.

 이번 달 순례지는 전남 강진의 무위사(주지 법화). 15세기에 지어진 주 법당 극락보전이 국보로 지정돼 있는 고즈넉한 절이다. 지난 9일 이 절에 순례단이 들이닥쳤다. 참가자가 많아 3일에 걸쳐 나눠 진행되는 기도회의 첫 날 행사다. 이를 동행 취재했다. 이달 순례는 전체 108차례 순례 중 71번째 행사였다.

 ◆기도회 다니다 깊어진 신심(信心)=9일 오전 6시 15분. 서울 조계사 앞에는 45인승 버스 8대가 일찌감치 진을 치고 있었다. 6시 35분. 예정된 시간에서 5분 지나자 버스 행렬은 바로 출발했다. 오전 11시 서해안고속도로 고창휴게소에 이르자 버스는 26대로 늘었다. 타 지역에서 출발한 버스가 합류해서다. 무위사에 모인 버스는 모두 46대. 전국에서 2000명 가량이 첫날 행사에 참석했다.

 하차 직전, 보살들은 짐꾸러미에서 초코파이 상자 하나씩을 꺼내든다. 무위사 인근 군부대 장병 위문용이다. 3일간 초코파이는 평균 3000상자가 걷힌다고 한다. 기도회 시작 이래 모두 270만 상자 이상이 기증됐다. 보시는 군부대 위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찰 주변에 3일간 서는 지역농산물 장으로 이어졌다. 도시에서 온 보살들이 장을 보며 지역 소득 증대에 한몫한다. 저소득층 자녀를 선정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다문화가정과 한국 가정의 결연을 주선하기도 한다.

 기도회의 하이라이트는 108배. 불교의 핵심 교리인 ‘참 나’ 찾기를 기원하며 모두가 몸을 숙여 108배를 올린다. 30분 가량 걸린다. 힘들어 하는 보살도 많다.

 왜 기도회를 찾는지 물었다. 서울 동대문에서 섬유 원단을 취급하는 이영수(63)씨는 “평소 찾기 힘든 절 구경하는 맛에 온다”고 했다. 울산의 주부 신모(53)씨는 “기도회에 나온 후부터 좋지 않은 일이 나를 피해가지는 않지만 쉽게 넘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큰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다행히 몸을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서울 청량리의 백애자(68)씨는 “관광 삼아 다니기 시작했는데 점점 신심이 깊어져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고 했다.

 ◆조직도 탄탄=도선사는 국내의 대표적인 대형 사찰 중 하나다. 등록 신도가 30만, 매주 법회 참석 인원만 5만 명을 헤아린다. 기도회 참석 인원 중 60%는 도선사 신도, 나머지는 다른 절 신도다. 40∼50명이 한 ‘법등(法燈·진리를 뜻하는 불교 용어)’이란 이름으로 모여 평소 유대도 다지고 기도회 참석 독려도 한다. 전국의 법등 수는 150여 개.

 혜자 스님은 “기도회를 한 달에 한 번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부처님께 가는 소풍이라고 말하는 신도도 있다”고 소개했다. 또 “신앙의 열기를 사회운동으로 전환시켜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기도회는 앞으로 3년간 더 이어진다. 108산사를 채울 때까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