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런던] 71세 호케쓰 “세계 노인의 희망 되고 싶어 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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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째 내전 중인 소말리아의 육상선수 잠잠 모하메드 파라(왼쪽)는 여자 400m 예선에서 일찌감치 꼴찌로 밀렸다.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끊었지만 8만 관중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런던 올림픽 최고령 선수인 일본의 호케쓰 히로시가 승마 마장마술 경기 때 모자를 벗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메달만이 목표가 아니었다. 가슴속 저마다의 꿈을 품고 런던에 왔다. 그들이 있어 영국은 진정 ‘경이로운 섬’이 됐다.

 일본의 승마선수 호케쓰 히로시(71)는 런던 올림픽 최고령 선수다. “전 세계 노인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고 출전 이유를 설명했다. 히로시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올림픽에 나가는 건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15년을 함께한 애마 우이스파가 다리 관절 수술을 받고 9개월 전 겨우 기력을 회복해서다.

 생각이 바뀐 건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때문이다. 평생을 바쳐 지금의 일본을 일궜던 노년층에게 대지진은 가슴속 큰 생채기로 남았다. 호케쓰는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출전은 나 자신을 위해서겠지만, 한편 대지진 이후 낙심했을 노인들에게 격려가 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장마술부문 출전 선수 50명 중 40위에 그쳤지만, 그는 일본에서 또 다른 올림픽 영웅으로 불린다.

 10년 넘게 내전 중인 소말리아. 육상선수인 잠잠 무함마드 파라(21)는 “올림픽에 참가해 소말리아도 여기, 이곳에 있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변변한 연습장도 없이 매일 아침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도로를 뛰었다. 그러다 폭탄 테러범으로 오해받아 군에 억류된 적도 여러 번이다. 400m 예선에서 꼴찌로 들어왔지만 8만 관중은 소말리아 국민을 대신해 런던에 선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쌍둥이 아들들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던 인도의 메리 콤(29)은 8일 열린 여자 복싱 플라이급(51㎏)에서 3위에 올랐다. 콤은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느라 아들들의 다섯 번째 생일도 함께하지 못했다. 지난해 한 아이가 심장수술을 받으며 사경을 헤맨 터라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하지만 여자 복서로서 12년 동안 기다려온 올림픽 무대였고,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콤은 경기 직후 "집에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돼 다행이다. 메달을 두 아들 목에 나란히 걸어주려면 하나를 더 사야 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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