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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좋아하다 가족사 눈떴다는 멕시코 한인 3·4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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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재외동포재단의 모국 체험연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멕시코 한인 3~4세들. 왼쪽부터 아나로사 멘도사 아코스타, 칸델라리아 호세리네 리 바르가스, 클라우디아 발렌티나 로페스 바스케스, 에두아르도 산체스 김 사라비아. [사진 재외동포재단]

일본과 을사늑약이 맺어지기 7개월 전인 1905년 4월 4일 인천항. 1033명의 한국인이 영국 상선 일포드호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이름도 생소한 나라 멕시코. 농장에서 일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가족·친지와 함께 이민길에 나선 이들이었다. 퇴역군인, 농부, 몰락한 양반 등 출신도 다양했다.

한 달여의 항해 끝에 배는 멕시코 남단 살리나 크루스 항구에 닿았다. 또 다시 열흘 정도 기차와 배를 더 탄 뒤 5월 15일 유카탄 반도의 도시 메리다에 도착했다. 중남미 지역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한국인이었다. 100여 년 멕시코 한인 역사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들의 후손 33명이 지난 7일 한국을 찾았다. 재외동포재단(이사장 김경근)이 주최한 ‘멕시코 한인 후손 모국 체험 연수’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한국사 강연을 듣고 서울·경주·울산을 오가며 다양한 문화 경험도 한다.

연수 개회식이 있었던 7일 오후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4명의 한인 후손을 만났다.

“저는 발렌티나입니다.” “저는 호세리네입니다.”

이민 3, 4세인 탓에 얼굴에서 한국인의 모습을 찾긴 어려웠다. 하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한국말로 자기 소개부터 했다. 모두 한국 방문이 처음이라고 했다.

클라우디아 발렌티나 로페스 바스케스(16)는 K팝을 좋아한다. 그룹 빅뱅의 멤버 탑의 열혈팬이기도 한 그는 K팝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됐다. “‘한국인 후손인 것 같다’는 얘기는 희미하게 접했지만 잘 알지 못했다. 조부와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K팝을 좋아하게 되면서 가족의 역사를 조사했고 할아버지가 한인 후손이란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발렌티나는 그 순간이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멕시코 한인 이민 역사가 시작된 메리다에서 왔다. 현지 한국 음악 동아리에서 전통악기 장구도 배웠고 한국어도 1년 반 넘게 공부하고 있다.

칸델라리아 호세리네 리 바르가스(17)는 증조부모 모두 한인이다. 한국의 성 ‘이’를 지금도 이름에 쓰고 있다. 호세리네는 “한인 후손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어를 1년 전부터 배웠다. 그러면서 K팝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그룹 틴탑의 멤버 리키의 팬이다.

아나로사 멘도사 아코스타(17)는 증조 할아버지의 이름 ‘최영동’을 한 자씩 정확히 발음했다. “한국어 수업을 7개월 정도 듣고 있는데 아리랑에 애국가까지 배웠다. 지금은 한국어로 자기 소개를 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며 “증조부의 나라 한국에 오니 자랑스럽다”고 했다. 멘도사는 “산업 엔지니어로 일하는 게 꿈이다. 발전한 한국의 산업 기술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에두아르도 산체스 김 사라비아(25)는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다. ‘김’이란 한국 성도 할아버지에게서 왔다. 가족 모임 때마다 불고기, 만두 등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불고기 요리는 꽤 자신 있다”는 그는 한식 요리사가 되는 게 꿈이다. “한국에서 꼭 요리를 배워보고 싶다. 매운 음식이 많은 멕시코와 한국 요리는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두 나라 음식을 접목한 퓨전 요리도 개발하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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