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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동맹, 임기 말이라고 티격태격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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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지난 칼럼에서 현재의 한·미 동맹이 폭넓은 전략적 골격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동시에 임기 말을 맞게 되면서 양국 관계 전반보다 개별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한국은 미국 측에 원자력협정과 미사일지침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이슈들이 한결같이 전략적 비전이 없는 전술적 소재일 뿐이라는 점이다. 이런 어려운 과제들은 실무 수준에서 논의될 게 아니고 다음 단계의 동맹 발전을 위한 보다 폭넓은 전략적 비전의 한 부분으로서 고위급 정책결정자들에 의해 검토돼야 한다. 새로운 전략적 비전의 첫 요소는 지난번에 언급한 것처럼 한·미 양국이 함께 일하면서 국제시스템에 이익을 주는 일이다. 미국은 한국이 핵연료 사이클을 일관적으로 갖추도록 지원하고 한국은 전 세계에 대한 핵에너지 공급자로서 투명성·핵비확산·신뢰·안전의 글로벌 스탠더드와 규칙을 세우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동맹 비전의 그 다음 요소는 한반도 안보다. 그 전략적 핵심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춰 한·미 군사동맹을 재조정하는 일이다. 북한이 최근 자국이 핵 보유국이라는 내용을 헌법에 삽입하면서 한국과 미국은 6자회담에 복귀하기만 하면 비핵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허상을 끝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젠 6자회담에 매달리는 대신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핵 저지를 위해 양국관계를 정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사일 사거리 연장은 힘든 과제다. 한국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에 따른 2001년 미사일지침에 의해 사거리를 300㎞ 이내로 제한받고 있다. 북한이 사거리가 4000㎞나 되는 미사일 개발에 나서면서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가능하도록 미사일 지침을 개정하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거리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이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권 반환에 따라 전쟁 억지력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자체 정보·감시 능력과 지휘통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서울의 전반적인 미사일방어능력 향상은 물론 새로운 미사일 전력의 양국 연합작전 가이드라인에 대한 합의도 한반도 전쟁 억지력에 중요하다.

 새로운 전쟁 억지 전략에는 또 다른 요소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북한과 핵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하는 것이다. 핵심은 자신들이 보유한 무기들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나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고 북한을 설득하는 일이다. 첫째, 장거리 미사일의 궤도 재진입 능력과 탄두 경량화 기술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그들의 무기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이런 무기로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둘째, 신뢰할 만한 핵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그릇된 믿음이 평양을 큰 문제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2010년 벌였던 일련의 도발은 자신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보복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했을 수 있다. 이러한 오판은 서울로 하여금 북한의 다음 도발 때는 북한 정권에 치명적인 군사적 대응을 하겠다는 결연한 각오를 다지게 했을 뿐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에 핵 보유국이 어떤 의미인지 기초부터 알려줘야 한다.

 북한과 관련된 또 하나의 주제가 핵 안전이다. 방사선 누출사고가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은 사고 전까지 비록 건설한 지 오래됐지만 비교적 안전한 핵 단지로 통했다. 그 반대로 북한의 영변 핵 단지는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0년 전 이 북한 핵시설의 방사선 차폐 시스템, 기중기 시설, 폐기물 처분장 등에 심각하게 결함이 있다고 판단했다.

 북한이 2010년 11월 공개한 오래된 플루토늄 단지와 비교적 근대화한 원심분리 재처리 시설은 원자로에 대한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시 현지를 방문했던 미국 과학자의 전언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했던 핵 전문가는 2007년 영변을 방문했을 때 현지에서 과거 가동 때 누출됐던 방사능에 오염됐는데 이는 미국에서라면 당장 시설을 폐쇄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북한 측은 한국의 핵 기술자들에게 자국에서 훈련받은 젊은 핵 기술자들이 실수를 통해 배우고 있다고 인정했다. 미국의 안보전문 연구기관인 노틸러스연구소의 전문가들은 이 시설의 사용후 연료봉이 원자로 근처에 있는 등 시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하게 설계돼 방사선 누출의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북한의 송전망도 핵시설의 정전과 대형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 주제는 북한 에너지 문제다. 1994년과 2005년의 핵 합의에서 북한이 원했던 것이 경수로 원자로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태 이후 경수로는 기술적으로 북한에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비핵화의 보상으로 줄 대안 에너지를 찾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한 일이다. 과거 한국은 재래식 발전을 제안했다. 러시아와 북한 사이의 최근 대화에서 나온 가스 파이프라인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핵에너지는 절대 협상 테이블에 다시 올라선 안 된다.

 요점은 동맹의 전략적 골격을 다지지 않고 이슈만 진전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양측은 지금의 현안에서 한 걸음 물러나 양국 동맹 발전을 위해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전략적 목표를 궁리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양국 관계 전반을 강화하면서 여러 이슈들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