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졸면 죽는다, 살려면 쉬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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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현 한국도로공사
천안지사 교통차장

졸면 죽는다! 혹자는 고3 교실에서, 어떤 이는 군대에서 들어봤다고 한다. 잠시 졸았다는 이유만으로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경우가 과연 있으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바로 우리가 매일 다니고 있는 도로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고속도로 사고통계를 보면 사망자의 33%가 졸음운전에 의해 발생한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은 졸음운전으로 발생하는 사망자 비율이 60% 이상까지 오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계산대로 하자면 70년대 이후 하루 평균 교통사고 사망자 21명 중 무려 13명이 졸음으로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본능을 잠시 못이긴 인간을 단죄하는 벌치고는 너무나 큰 벌 아닐까? 조물주를 원망해야 할지 차를 탓해야 할지 심히 고민된다.

차만 타면 졸음이 온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걸을 때는 정맥의 피가 심장이 아닌 종아리 근육의 수축작용에 의해 몸 위쪽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이런 작용이 장시간 되지 않기 때문에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긴다. 또 차 실내는 산소가 부족해지고 뇌는 점차 활기를 잃어간다. 달리는 차는 끊임없이 일정한 소음과 진동을 만들어 운전자의 감각을 피로하게 만들며, 노면에서 반사된 직사광선은 눈을 혹사시켜 피로를 가중시킨다. 한마디로 운전석은 졸 수밖에 없도록 박자가 딱 들어맞는 환경인 것이다.

졸음운전은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하다. 음주운전은 안 하면 그만이고 운전 중 의식이라도 있지만 졸음운전은 순간 무의식 상태에서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실제로 졸음사고 현장에 가보면 스키드마크도 없고 운전자가 방어조작을 한 흔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졸음운전을 예방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무조건 휴식뿐이다. 졸음 앞에는 장사가 없다. 전쟁터에서도 쏟아지는 게 수마(睡魔)라고 한다. 오죽하면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까지 있었겠는가? 최소한 2시간마다 한 번씩은 쉬어가야 한다. 휴게소가 아직 많이 남았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안전한 갓길에 잠깐 세워 차에서 내려 졸음을 깨고 볼 일이다. 운전 중에 하품이 나오면 대수롭지않게 생각하지 말고 쉴 곳을 먼저 찾아야 한다. 이번 피서길은 놀 계획뿐 아니라 휴식 계획도 충실히 준비하도록 하자.

백동현 한국도로공사 천안지사 교통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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