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수의 싱가포르뷰] 국제금융시장 ‘올림픽 휴전’ … 거래 줄고 안정세 뚜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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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유럽 금융의 중심지인 영국 런던에서 올림픽이 개막했다. 자국 선수가 몇 개의 메달을 딸 수 있을지가 각국의 최대 관심사다. 최종 결과야 올림픽이 끝나야 알겠지만 올림픽 개막 열흘 전쯤 골드먼삭스는 이번 올림픽에서 각국이 획득할 금메달 숫자를 예측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골드먼삭스는 “각국의 금메달 획득 수는 경제 성장력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며 독자적으로 개발한 성장력 지표에 인구 등 변수를 고려한 예측 모델을 만들었다. 과거 올림픽 대회 성적에 적용한 결과 이론상 수치가 실제 금메달 개수와 거의 들어맞았다는 게 골드먼삭스 측의 주장이다.

  최근 싱가포르 경제가 급격하게 활기를 잃었다는 평가가 무색하게 간만에 온 나라에 활기가 넘친다. 싱가포르가 이 정도인데 오랜 불경기와 끊이지 않는 금융위기 소식에 지친 유럽인에게 자신의 동네에서 펼쳐지는 올림픽은 진정한 의미의 축제이자 휴가일 것이다.

 4년 전인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됐을 때도 상황은 지금과 비슷했다. 올림픽이 열렸던 2008년 7월 이전까지 전 세계 금융시장은 미국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직전 7개월 동안 세계 증시는 심한 변동성을 보이며 하락했다. 그러나 올림픽이 벌어졌던 2주 동안엔 세계의 이목이 서브프라임에서 올림픽으로 쏠리면서 변동성은 줄어들었고 시장은 안정세를 유지했다. 올림픽 폐막이 얼마 지나지 않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이 같은 사례를 비춰보면 아마도 앞으로 2주 동안은 시장이 4년 전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지 않을까 한다. 지난주 유례없이 강한 어조로 유로존을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발언이 올림픽 개막 직전에 나온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도 든다. ECB의 국채 매입을 시사한 드라기 총재의 강력한 발언에 따라 올림픽 개막날인 지난달 27일 전 세계 증시는 급등했고, 유럽은 축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었다. 물론 지난주 드라기 총재의 발언이 사실상 실효가 없다는 게 드러나면서 증시가 조정을 받기는 했지만 1년 전 같은 폭락은 없었다.

 실제로 이곳 현지의 한 유럽계 은행에서는 최소한의 인력만 남고 대부분이 올림픽 기간에 맞춰 여름휴가를 갔다는 소식도 들린다. 앞으로 2주간 시장의 거래량은 줄 것이고, 거래량이 줄더라도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의 대세다. 한창 금융 전쟁이 벌어지던 와중에 갑자기 들리는 이러한 소식은, 마치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크리스마스 휴전’을 연상하게 한다.

 현대사에서 올림픽은 상상 이상으로 해당 국가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됐다. 물론 ECB가 유럽 각국과 공조해 얼마나 신속하게, 효과적으로, 장기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느냐가 올림픽 이후 시장의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참여자들의 ‘센티먼트(심리)’임을 감안할 때 이번 올림픽 역시 유럽 사태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한홍수 KIARA 주식부문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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