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사금융이 도대체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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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지난 20일부터 사채업자들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정부.여당은 서민 금융이용자 보호대책을 마련하고 있어요. 대통령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사금융 피해를 줄이도록 대책을 세우라" 고 지시했답니다.

국세청 조사요원이 들이닥친 서울 여의도의 한 사채업자 사무실에는 채권확인증.위임장.부동산임의경매승낙서 등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어요. 이 사채업자는 아파트.상가 등 무려 22개의 부동산을 갖고있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그러면 정부가 팔을 걷어붙인다고 과연 사금융이 사라질까요□ 금융전문가들은 "사채업자들이 정부의 단속을 피해 한동안 물밑으로 숨겠지만 사금융을 절대 뿌리뽑을 수 없다" 고 말합니다. 비싼 이자를 물더라도 꼭 돈을 빌려야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사금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요가 있으면 항상 공급이 뒤따르는 경제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셈이죠.

얼마전 한 20대 여성이 사채업자에게 1백50만원을 빌렸다가 인생을 망친 사건이 생겼어요.

이 여성은 한달에 1백%나 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폭력배에게 시달린 끝에 지방 유흥가로 팔려갔다니 정말 무서운 일이지요. 요즘 (예금)금리가 너무 낮아 생활비가 안된다고 야단인데, 다른 한편에선 이처럼 높은 이자를 갚지못해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이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고금리로 돈을 빌릴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담보도 없고 신용이 나빠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은행 같은 제도권 금융이 아니면서 높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사(私)금융이라고 부른답니다. 어음을 할인해주는 사채업자와 'OO기획' '▲▲개발' 등 그럴듯한 금융기관처럼 행세하는 사금융 회사들이 요즘 많이 생겨났어요.

이들은 은행이나 신용금고에서 연 10% 정도의 금리로 돈을 빌린 뒤 신용 상태가 나빠 대출을 받지 못하는 서민을 상대로 높은 이자를 받아 돈놀이를 합니다. 일부 악덕업자들은 돈을 빌렸다가 갚지 못하는 사람에게 폭력배를 시켜 협박까지 서슴지 않아요.

1990년대 들어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사금융은 외환위기 이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요. 은행이 신용이 나쁜 회사나 개인에게 대출을 꺼리기 때문이죠. 이처럼 제도권 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금융은 언제든지 되살아납니다.

그러면 사금융을 이용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하겠지요. 하지만 서민들로선 제도권 금융은 여전히 문턱이 높습니다. 특히 서민들이 주로 이용해온 상호신용금고는 1997년 2백31개사에서 지금은 1백26개로 줄었어요.

그렇다고 사금융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어요. 신용은 나쁘지만 급한 사정이 있는 개인과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고, 어음 할인을 통해 현금을 유통해 주는 자금줄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은 분명하지요.

문제는 사금융 업자들이 받는 이자율이 은행이나 신용금고.신용카드사 등 제도권 금융기관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다는 겁니다. 은행 대출금리보다 10배~20배 높은 경우도 드물지 않아요. 1998년 이자제한법이 폐지되면서 사채 이자율이 더욱 크게 올랐습니다.

이자제한법은 돈을 빌릴 때 일정 한도 이상의 금리를 받을 수 없도록 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입니다. 1962년에 만든 이 법률은 외환위기 직후 없어졌어요. 국제통화기금(IMF)이 '금리는 자금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돼야한다' 고 없애도록 권고했기 때문이었죠.

최근 사금융의 나쁜 점이 불거지면서 이자제한법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자제한법을 부활하면 금리 한도에 묶여 돈을 돌지 않는 경우가 생겨나 오히려 서민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금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먼저 신용불량자들이 많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신용불량자들은 신용카드를 마구 쓰거나 카드로 돈을 빌렸다가 낭패를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미성년자나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카드를 내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둘째로 사채업을 밝은 곳으로 끌어내야 합니다. 현재 정부에 등록한 사금융 업소는 1천4백여 곳인 반면 등록하지 않고 몰래 영업하는 업체가 3천여개에 이른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도권 금융기관들이 담보가 부족한 서민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행과 상호신용금고가 제자리를 잡으면 서민들은 굳이 금리가 높은 사금융에 기댈 필요가 없게 되겠죠. 금융이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사금융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랍니다.

정제원 기자 newspoe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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