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고환을…" 40대男, 몸 개조 결과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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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 권으로 읽는
건강 브리태니커
A J 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살림Biz
472쪽, 1만7000원

몸. 몸이 문제다. 굳이 잘록한 허리와 울퉁불퉁한 근육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자기계발은 건강이 아닐까. 한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몸으로부터 적색 경고를 받고 ‘내 몸 개조 프로젝트’에 돌입한 이야기와 비만을 경제·환경의 관점에서 파헤친 책을 소개한다. 

내 나이 마흔하나. 근육은 처지고, 뇌는 쭈그러들고, 혈관은 좁아지고, 감각은 무뎌진다. 똥배는 다섯 달 후 출산을 할 모양인데, 아내는 틈만나면 “예정일이 언제냐”고 묻는다.

 그런데도 엉덩이와 의자는 소울 메이트인 것처럼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많이 먹으면 치명적인 술, 초콜릿, 커피는 도통 끊을 수가 없다. 입으로 숨쉬는 잘못된 호흡 습관은 어떠한가. 숨쉴 때마다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가 바로 옆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 같다. “헉! 이거 내 이야기인데”라고 생각했다면 놀라지 마시길. 미국 뉴욕에서 세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는 A J 제이콥스의 이야기다.

남들처럼 적당히 덜 건강하게 살던 제이콥스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휴가를 갔다가 급성 폐렴에 걸린다. 그는 “내 평생 처음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를 생과부로 만들지 않기 위해 ‘760일간 죽기 살기 몸 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A J 제이콥스는 “41년 동안 내 몸의 주인으로 살면서 내 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비록 극단적이었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몸에 대해 집중 공부하는 시간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사진 살림Biz]

 조금 더 건강해지는 게 목적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이 되어 ‘몸짱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세상의 모든 건강 비법을 직접 체험하겠다는 일념으로 하버드대·존스홉킨스대 의사들을 비롯해 수많은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듣는다. 그리고 시종일관 유쾌하고, 때론 눈물겹고, 가끔 황당무계한 25개월간의 실험 과정을 책으로 엮어냈다.

 ◆매달 한 부위에 집중하기=제이콥스는 몸을 부위별로 개선해 나가기로 결심한다. 위·심장·폐부터 눈·귀·코까지 23개의 신체 부위가 대상이다.

먼저 위. 저자는 현대인이 음식을 징그럽게 많이 먹는 것을 직시했다. 덜 먹기 위해 집중해서 먹는 일명 ‘음미명상법’을 시도한다. 먹기 전에 음식의 풍미를 상상한 후 천천히 꼭꼭 여러 번 씹어서 먹는 법이다. 위에서 뇌까지 배부르다는 메시지가 도달하려면 20분이 필요하다.

 그러니 천천히 의식하며 먹을수록 덜 먹게 되는 법. 삼지창만한 포크도 미니 포크로, 접시도 작은 것으로 바꿨다. 식탁 위 손거울은 필수. 자신이 먹는 모습을 보면 덜 먹게 된다는 연구가 있단다.

다음은 엉덩이. 저자는 엉덩이와 의자의 이별을 위해 ‘게릴라 운동’을 시작했다. 볼 일을 보러 갈 때 무조건 뛰어 가는 거다. 수퍼마켓도 뛰어가고, 학교로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도 뛰어갔다. 책상도 바꿨다. 러닝머신에서 걸으면서 글을 쓰는 거다. 이 책도 러닝머신 위에서 썼다.

더 많은 성생활을 위한 도전도 감행한다. 저자는 비뇨기과에서 “노인의 고환을 갖고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테스토스테론 생성제를 먹기도 한다. 이 밖에도 화장실 잘 가는 법, 더 똑똑해지는 법, 냄새를 잘 맡는 방법 등 직접 실험해 본 건강 상식을 깨알같이 풀어놨다.

 ◆괴짜 실험맨의 불가능은 없다=책의 미덕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건강 미션도 실천으로 옮기는 저자의 실험정신에 있다. 폭소가 터지는 지점이자, 현대인의 ‘건강 염려증’을 풍자하는 장면이다.

저자는 ‘구석기 시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따라 원시인이 된다. 공원에 모여 윗옷을 벗고 맨발로 전력 질주 한다. 먹이를 쫓는 호랑이의 자태로 통나무 위를 기어도 본다. 춥고 피곤하다. 저자는 발가락에 박힌 유리조각을 빼내며 “그래도 자연 경관을 보면 심적으로 건강해진다”고 자위한다.

걷다가 사고로 죽지 않기 위해 보행자용 헬멧도 써본다. 1년에만도 보행사고로 평균 6만 명이 다치고 4000명이 죽는다. 하지만 이내 포기한다. 이미 귀 보호를 위한 소음 차단 헤드폰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둘 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외에도 UV광선으로 치아 미백하기, 서양식 좌변기 대신 쪼그려 앉아 용변 보기 등 긴가민가한 방법들이 총동원된다.

 ◆진짜 건강한 삶이란?=어쨌든 25개월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체중은 7.1kg 빠졌고, 체지방 비율은 절반 이상 줄었다. 가슴은 단단해졌다.

 그런데 저자는 자문한다. “살아있는 사람 중 내가 최고로 건강한가?” 저자는 2년여 동안 음식과 운동에 신경을 쓰느라 삶의 균형을 잃어버렸다. 아이와 함께 즐기던 심야영화도 못 보게 됐고, 학예회도 여러 번 놓쳤다. 건강 음식 집착증도 생겼다. 특히 건강하던 고모가 백혈병에 걸려 갑자기 죽는 것을 보고 회의론에 빠지기도 했다.

실험의 결론은 ‘건강’을 보다 건강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처음에 자신이 왜 건강하고 싶었는지를 되짚는다. 아이들이 장성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건강이 삶의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한결 여유로워진다. 지금까지 배운 지식은 실생활에 유용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적당히’다.

한국판 제목이 건강 백과사전처럼 번역됐지만, 책은 ‘건강한 삶’의 의미를 찾는 에세이로 읽는 것이 좋은 독법이 될 듯하다. 저자의 좌충우돌 도전기 속엔 위트와 유머가 있고,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속엔 감동과 자기 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 한 권으로 갑자기 건강해지길 바라거나, 두툼한 뱃살을 보고 공연히 자책하지 말자. 당신의 마음만은 홀쭉해질테니. 

A J 제이콥스의 몸 개조 프로젝트 팁

①설탕 끊기: 설탕이 가득 든 음식을 먹으면 1000달러를 나치당에 기부하기. 돈이 아까워서 데굴데굴 구를 정도의 조건을 달아놓으면 쉽게 끊을 수 있다.

②네티포트(코세척 자동 주전자): 찻주전자처럼 생겼다. 콧구멍 속으로 소금물을 따라 부으면 안쪽을 돌다가 반대 쪽 콧구멍으로 흘러나온다. 코를 깨끗이 씻으면 가래가 묽어져서 제거하기 쉬워지는 원리다. 감기에 걸렸을 때 잘 듣는 민간요법.

③걱정교환법: 내 걱정을 남이 해주고, 남 걱정을 내가 해주면서 서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다. 스트레스가 쌓일 것 같으면, 미리 약속한 상대방에게 문제를 맡아달라고 한다. 의외로 효과 만점.

④뇌전문가가 추천하는 정신계발법: 십자낱말 풀이하기, 간단한 수학 방정식 풀기, 시를 외우기, 언쟁하기, 새로운 언어 배우기.

⑤건강한 칫솔법: 부드러운 모로 2분 동안 해야 한다. 칫솔을 잇몸에 45도 각도로 대고 누르면서 내려온 후, 다시 위쪽 잇몸으로 들어 올리는 것을 반복한다. 치실을 쓰는 것도 좋다.

⑥쪼그려 앉아 용변보기: 좌변기에 편하게 앉는 것은 쪼그려 앉기보다 대장에 무리를 가해 치핵을 크게 만든다. 또 쪼그려 앉은 사람이 용변도 빨리 본다. 서양식 좌변기라면 접이식 보조기구를 이용해보자.

A J 제이콥스

미국 남성잡지 에스콰이어 기자이자 기발한 실험가. 세상의 모든 것을 알겠다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고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를 썼고, 성경의 모든 계율을 지킨 뒤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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