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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해서 좋아요” 새로 뜬 수도권 이방인의 명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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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은 전국에서 세 번째로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주택가 골목에 들어선 각 상점 간판에는 한글보다 중국어나 한자로 표기된 것이 더 많다. [박종근 기자]

경기도 안산시 신길동에 사는 방글라데시 출신의 하비블(46)은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시흥시 정왕동을 찾는다. 장도 보고 친구들과 고향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다문화특구’로 유명한 안산시 원곡동이 있지만 그는 정왕동을 고집한다.

 오전에는 정왕동의 외국인복지센터에서 컴퓨터와 한글을 배우고 오후에는 친구들과 중앙시장에 들러 장도 보고 양꼬치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그는 “원곡동은 사람이 너무 많아 시끄럽고 복잡하지만 정왕동은 동네가 깨끗하고 안전해 우리들 사이에선 숨은 명소로 통한다”고 말했다.

 정왕동이 외국인과 현지 주민이 어우러지는 ‘제2의 다문화특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시흥시에 사는 외국인은 모두 2만768명으로 2003년(1만1039명)보다 배로 늘었다.

 이 중 정왕동으로 불리는 정왕본동(8212명)과 정왕1동(6693명)에만 절반이 넘는 1만4905명이 산다. 숫자만 따지면 외국인 거주지로는 원곡동(2만3736명)과 서울 구로구 구로동(1만8582명)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다. 국적으로는 중국·필리핀·베트남·일본·미국 등 100개국이 넘는다.

 정왕동이 뜨는 이유는 우선 위치가 좋아서다. 정왕동은 근처에 시흥스마트허브가 있다. 옛 시화·반월산단이다. 거주 외국인 대부분이 이곳에서 일을 한다. 지하철 4호선 정왕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게다가 주택의 80~90%가 지은 지 5년 남짓한 신규 다세대 주택 또는 원룸인 데다 가격도 싸다. 몽골 출신의 게르엘마(27·여)는 “집값이 싸서 7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원곡동이라면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5만원은 줘야 하는 방이 정왕동에서는 보증금 없이 15만~30만원이면 입주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흔히 발생하는 폭력이나 절도 같은 범죄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적다. 한 주민은 “원곡동은 범죄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곳 정왕동은 외국인이나 우리 주민 모두 평온하게 잘 지낸다”고 말했다.

 집을 찾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부동산들은 주말과 공휴일에도 문을 연다. 조아부동산 이정미(43) 사장은 “원곡동은 다문화특구로 지정되면서 집값이 많이 올랐지만 정왕동은 방값이 저렴해 원곡동에 사는 외국인들도 많이 이사 온다”고 전했다.

 자연스레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상점 수도 배로 늘었다. 300여 개 점포가 몰려 있는 중앙시장은 2~3년 전만 해도 10여 곳에 불과했던 외국인 운영상점 수가 85곳으로 늘었다. 다문화마트나 양꼬치구이 등 다양하다.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는 중국 선양 출신의 중국동포 오성호(42)씨는 “상가가 생기면서 여가를 즐기려는 외국인들이 원곡동에서 정왕동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시흥=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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