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不阿貴<법불아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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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호 27면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영공(靈公)에게 미자하(彌子瑕)라는 남총(男寵·남자 친구)이 있었다. 영공은 젊은 미자하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미자하가 복숭아를 하나 먹다가 절반을 영공에게 주었다. 영공은 기뻐하며 받아 먹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가 늙자 영공의 사랑도 바뀌었다. 그는 미자하가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일을 생각해 내고는 괘씸하다고 여겼다. 영공은 결국 미자하에게 벌을 내리고, 쫓아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한비자(韓非子) 세난(說難) 편에 나오는 얘기다. 법가(法家)의 흐름을 연 한비자는 이 고사를 인용한 뒤 ‘사람이 바뀐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건이 다른 것도 아닌데 어찌 상벌이 다를 수 있느냐’고 한탄했다. 한비자는 이 같은 모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법치(法治)’라고 주장했다.

한비자에게 법은 ‘드러날수록 좋은 것(法莫如顯)’이었다. 또 “법은 잣대가 같고 변함이 없어야 하며(法莫如一而固), 백성들이 그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使民知之)”고 했다. ‘동일한 잣대(一)’ ‘흔들리지 않는 정당성(固)’ ‘투명성(顯)’이 법의 생명이라는 얘기다. 공평(公平)·공정(公正)·공개(公開)라는 현대적 의미의 법 정신과 다르지 않다.

한비자는 법이 대상에 따라 달라서는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먹줄이 휜 나무를 따라 굽지 않듯, 법은 귀인에게 아첨하지 않아야 한다. 법을 시행함에 있어 똑똑한 사람이라도 이를 피할 수 없고, 용감한 자도 감히 저항할 수 없다. 대신이라고 해서 법을 피할 수 없고, 필부라고 해서 상에서 제외되지도 않는다(法不阿貴, 繩不撓曲. 法之所加, 智者弗能辭, 勇者弗敢爭. 刑過不避大臣, 賞善不遺匹夫).” 그는 또 리더가 먼저 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성의 주인이라는 사람이 법을 무시하고 사심을 갖는다면, 위아래 구별이 없어질 뿐(人主釋法用私, 則上下不別矣)”이라는 얘기다.

집권 말기 권력형 부패가 터져나오고 있다. 사람이 바뀐 것도 아니고, 사건이 다른 것도 아닌데 대통령 임기 말만 되면 여지 없이 실세라던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가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비자가 활동했던 시대에서 무려 2000년여가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그가 말한 ‘법의 정신’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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