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공짜로 더 넓히려다 … 설 자리 좁아진 재건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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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공짜로 받는 새 아파트 면적을 늘리려던 재건축단지들이 역풍을 맞고 있다. 새집을 싸게 짓기 위해 무상지분율을 무리하게 높였다가 시공사가 확정되지 않아 사업이 지연되고 있어서다.

 재건축 조합원들은 낡은 아파트를 헐고 새 아파트를 지을 때 일종의 공사비인 추가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를 줄이려면 무상지분율을 높여 공짜로 받을 수 있는 아파트 면적을 늘리면 된다. 조합원들의 부담이 작아질수록 일반분양가가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집값 상승기엔 일반분양이 잘돼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 집값 하락세가 계속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사업성이 좋을 것으로 보이던 인근 재건축단지에서 미분양이 발생하자 무리한 계약조건을 내걸었던 건설사들이 계약조건 변경을 요구하면서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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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 주공7단지는 2010년 6월 무상지분율 163%를 제시한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지만 아직까지 롯데 측과 본계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가계약 당시 조건으로 공사를 진행하자는 조합 측과 사업성 악화로 당초 제시한 지분율을 지키기 어렵다는 롯데 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7단지가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3.3㎡당 일반분양가가 2700만원 이상 돼야 할 것으로 업계는 본다. 그러나 재건축한 인근 고덕 주공1단지(고덕 아이파크)는 2009년 일반분양 때 분양가가 3.3㎡당 2500만~3000만원이었으나 입주한 지 2년7개월이 지난 현재 일부 미분양분을 1900만원대에 할인 분양하고 있다. 고덕동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현재 시장 상황에선 3.3㎡당 1800만원의 일반분양가가 적절하다”며 “이 경우 고덕 7단지 무상지분율이 떨어지는 바람에 추가부담금이 늘어 조합 측이 지분율 인하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2010년 5월 시공사를 선정한 고덕 주공6단지 사정도 마찬가지. 이 단지는 조만간 두산건설과 본계약을 할 예정이지만 7단지보다 높은 무상지분율(174%) 때문에 계약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산업개발을 시공사로 선정한 고덕4단지에선 조합 측이 일반분양가를 낮추기 위해 당초 무상지분율(141%)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부 조합원이 반발하면서 사업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

 조합 측이 높은 무상지분율을 요구하자 1조원짜리 재건축 시공자 선정 입찰에 건설업체가 한 곳도 참여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3일 시공사 선정 입찰을 하려던 고덕2단지에선 조합 측이 무상지분율 150%에다 일반분양분이 미분양될 경우 현금 대신 미분양 아파트로 공사비를 대납할 수 있다는 입찰 조건을 내걸자 한 업체도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고덕2단지의 경우 시공사 선정 입찰이 무산된 이후 59㎡형(공급면적) 호가(부르는 값)는 지난주 초 5억8000만원에서 지금 5억6000만원으로 일주일 새 2000만원 빠졌다. 7단지 59㎡형은 올 초 5억8000만~6억원에서 현재 5억2000만~5억3000만원, 6단지 59㎡형도 5억5000만~5억6000만원에서 4억8000만원으로 각각 내렸다.

 이 때문에 주변보다 무상지분율을 낮게 받는 재건축단지도 나왔다. 과천 주공6단지가 150%의 무상지분율을 보장받은 상태에서 인근 과천 주공1단지는 이보다 20%포인트나 낮은 130%의 무상지분율을 선택했다. 과천시 원문동 오렌지공인 박강호 사장은 “이제는 조합원들도 재건축에 대한 막연한 기대보다는 실익을 찾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재건축 무상지분율

재건축 조합원이 가진 땅(지분)을 기준으로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새 아파트 면적 비율. 무상지분율이 150%라면 33㎡짜리 땅을 가진 조합원에게 아파트 49.5㎡를 추가 부담금 없이 지어준다는 뜻이다. 시공업체는 보통 일반아파트 분양가를 높여 이 비용을 충당한다. 무상지분율을 둘러싼 조합과 시공업체의 이해관계는 엇갈린다. 조합 입장에선 무상지분율을 높이는 게 유리하고 시공업체는 낮은 무상지분율이 낫다.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분양가를 비싸게 받지 못해 분양 수입이 공사비용보다 적으면 시공업체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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