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치러진 헐리우드 최대의 축제 아카데미 시상식은 각 부문에서 경합을 벌인 배우와 작품들의 수상결과만을 흥미거리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누가 주연상을 받고 어떤 영화가 작품상을 타는 지보다 오히려 해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글래머 배우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얼마나 많은 '살'을 드러내 보이는지를 더욱 큰 관심거리로 만드는 듯하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후의 볼거리를 모조리 중계하는 한 케이블 TV 방송은 시상식 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Red Carpet (시상식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련된 붉은 색 카페트)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패션쇼를 방송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와 함께 시상식이 끝난 뒤 펼쳐지는 Vanity Fair Party(저녁에 오스카 참가 배우들을 초청해 벌이는 흥청망청 술자리)에서 새롭게 파티 가운으로 갈아입은 스타들을 앞다퉈 찍어 동영상으로, 사진으로 마구 찍어내 팔아댄다.
베르사체와 알마니, 발렌티노등 유명브랜드가 오스카 참석 배우들의 옷을 준비하기 위해 온정성을 다 기울이는 것도 이로 인한 엄청난 광고효과 때문.
한번 TV 중계로 끝나지 않고 신문으로 잡지로 두고두고 재생산되는 스타들의 사진을 장식하는 옷에 자신의 상표를 걸어두는 것은 비할 바 없이 남는 장사다.
아무튼 올해의 옷차림 경쟁은 예년과 다름 없이 여성 스타들 사이에서 불똥을 튀었다.
이번 Red Carpet 전쟁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스타는 역시 여우주연상의 주인공 줄리아 로버츠.
지난 10여년간 최고의 흥행 배우로 인기를 몰아왔지만 오스카와는 인연이 없었던 로버츠는 지난해 히트작 '에린 브로코비치'로 여우주연상 수상을 기정사실로 한 채 붉은 카페트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로버츠는 생애 최고의 순간을 위해 옷차림을 준비하면서 헐리우드 스타들이 주로 이용하는 하루 4천불(한국돈으로 5백만원 이상)짜리 패션 코디네이터를 고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로버츠는 전문가들의 말을 듣기보다는 10살짜리 조카 엠마의 조언을 채택했다.
여우주연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올라선 로버츠가 선보였던 발렌티노의 검은색 벨벳 위에 걸쳤던 흰 줄장식이 바로 그것.
로버츠와 함께 주목을 받은 배우로는 지난해 마이클 더글라스와 결혼한 영국의 캐더린 제타-존스, 외국 영화로 대단한 성과를 거둔 '와호장룡'의 주제가를 부른 코코 리, 위노나 라이더, 케이트 허드슨등이 있었다.
제타-존스는 "옷을 보는 순간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베르사체의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으며 코코 리는 무지개 무늬로 아프리카 토속 의상을 연상케 하는 샤넬 브랜드를 입고 "다채로운 색깔의 재미있는 옷을 입고 싶었다"고 말했다.
라이더는 DKNY의 도나 카란이 디자인한 드레스를 걸쳤으며 허드슨은 푸른 색 계열의 드레스를 입고는 "보다 어리고 섹시한 연출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해마다 벌어지는 오스카의 옷차림 경쟁에는 우아한 여성스타들의 정통파 패션말고도 파격적인 노출로 팬들을 즐겁게 하는 배우들도 상당하다.
TV 시리즈 'Bay Watch'로 성공한 육체파 배우 파멜라 앤더슨은 올해도 군데군데 찢어진 짧은 진 치마와 상당한 부피의 가슴을 거의 다 보여주는 셔츠를 질끈 묶은 채 모습을 나타냈다.
또 X-file의 FBI 요원 질리안 앤더슨도 저녁에 열린 Vanity Fair Party에서 등부분이 거의 없는 드레스를 엉덩이의 절반이 보일 정도로 깊숙이 판 채 안에 입은 아슬아슬한 줄팬티 일부까지 드러내 보이며 X-file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옷차림 경쟁의 대부분은 여성 스타들의 것이지만 남자배우들도 가끔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
납치협박으로 다른 시상식에서 FBI 요원들의 경호까지 받은 바 있는 올해 남우주연상의 주인공 러셀 크로우는 알마니의 턱시도 왼쪽 가슴에 붉은 색 리본으로 매단 메달을 달고 나타나 "2차대전 때 종군 사진기자로 활약한 할아버지를 기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남우조연상 후보로 올랐지만 미끄러진 '글래디에이터'의 황제 조아킨 피닉스는 시상식 진행도중 목을 꽉 죈 넥타이를 풀며 딱딱한 옷차림이 불편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